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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an Kim Dec 27. 2019

좋은 사진이란? (기다림이 좋은 사진을 만든다)

제이 안(J. Ahn) 작가의 사진전을 보고 

통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그냥 찍는다. 눈으로 보고, 찍고 싶다고 생각하고 사진기를 꺼내 셔터를 누른다. 이런 프로세스가 일반적인 취미 사진을 찍는 과정이다. 반면 Photographer는 찍고 싶은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한다. 프린트된 결과를 상상하며 각각 요소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를 고민한 뒤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때때로 이런 상상을 해서 찍는 사진의 경우 기다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장소, 사물(건물), 자연 풍경은 내가 보는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지만 빛, 움직이는 사물 특히 사람 등 요소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기획 사진이 아니라면 자연스러운 사진을 얻을 땐 보통 통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내가 상상한 사진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필수적이라면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금방 기다려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까다로운 요소를 상상했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Leica MP, Summilux-M 1:1.4/35 FLE | Bergger Pancro 400 B&W film

얼마 전 제이 안 (J. Ahn) 사진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에 다녀왔다. 원래 제이 안 작가는 색을 정말 화사하게 잘 사용하기 때문에 흑백 사진보다는 컬러로 보아야 진가를 발휘하겠지만, 공교롭게 내가 갤러리를 방문했을 때 흑백필름을 넣은 상태에서 아쉬운 대로 흑백 사진을 올려본다.


위 사진을 보면 가운데 여성이 버스의 광고와 똑같은 머리 모양을 (묶은 모양) 하고 머리도 살짝 기울여 지나가고 있다. 광고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기가 막힌 장면이 연출되었다. 왼쪽의 연인은 남성이 여성에게 달달하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다. 그 옆 벽화에 와인잔을 건네는 모습과 묘하게 닮아있다.  사실 색까지 보면 더욱 절묘하다. (색도 마치 시의 운율처럼 벽화와 사람이 일치한다.)


제이 안 Photographer는 이미 사진을 찍기 전에 이런 순간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원하는 대상 즉 통제할 수 없는 요소(사람)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같은 장소에서 기다린다. 어떤 경우는 며칠을 같은 장소에서 몇 시간도 기다린다고 한다.




멋지긴 한데, 나도 이런 사진 찍을 수 있어..
운이 좋았네, 절묘한 순간을 담다니...



아마추어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자신도 같은 공간에 가면 위와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별로 특별할 것 없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는 위와 같은 사진을 보면 가장 먼저 "어떤 렌즈를 사용했는지?" 혹은 "어떤 카메라를 사용했는지?"를 묻는다. 위 사진에서 그런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머릿속으로 상상한 순간을 마주쳤을 때 사진을 담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더욱 중요한 사진이기 때문이다.


Leica MP, Summilux-M 1:1.4/35 FLE | Bergger Pancro 400 B&W film


Leica MP, Summilux-M 1:1.4/35 FLE | Bergger Pancro 400 B&W film

그녀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기다림"의 결과이다. 그 때문에, 사진 한 장 한 장에 보통은 몇 시간에서 며칠의 기다림이 숨어 있으며, 그 이야기를 들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또한, 도시의 색도 어찌나 화사하게 잘 표현했는지 모른다. 또 한 가지 특징은 한 장의 사진만으로는 어느 도시를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독특한 사진이 많다. 삼청동에서 찍은 사진도, 뉴욕 혹은 파리에서 찍은 사진도 모두 그 나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운 좋게도 제이 안 작가의 사진을 구매할 수 있었다. 사진 한 장에 숨어있는 기다림을 구매한 것이다.



나는 아직 몇 시간, 며칠을 기다려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다. 아직 생계(?) 핑계로 늘 바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아야 몇 분 혹은 몇십 분이다. 그래도 나도 기다리는 사진을 좋아한다. 사진을 찍기 전에 움직이는 사물 혹은 사람이 어느 공간에 위치하면 좋겠다고 상상하고 그 순간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Leica MP, Summilux-M 1:1.4/35 FLE | Bergger Pancro 400 B&W film

위 사진도 그렇게 얻어진 사진이다. 내가 즐겨가는 테라로사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바리스타가 바로 그 자리에 지나갈 때, 또 다른 바리스타는 뒤돌아서 있는 모습을 얻고 싶었다! 그리고 몇 분 기다림의 결과 원하는 사진을 얻었다. 


사람마다 좋은 사진의 기준이 다르다. 하지만, 대체로 좋은 사진은 막 (연사로) 찍어서, 혹은 운이 좋아서 찍은 사진은 잘 없다. 원하는 순간을 상상하고 그 순간을 담은 사진. 이런 사진 한 번 찍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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