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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Mar 27. 2020

부산에서 온 편지

엄마의 80년 인생을 기록했다. 기록이라하지만 내 머리 속에 남아있는 단편적 기억을 모은 것일 뿐이다. 그 기록의 고랑 고랑마다 미쳐 걷어 올리지 못한 많은 엄마의 인생조각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도 부족한 내 기억이나마 모아 엄마를 아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을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조금이나마 알아주고 싶었다. 말을 못하게 되면서 엄마의 인지와 판단 능력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과거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게 가지고 있다.


엄마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써서 브런치북으로 만들었지만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이 읽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소장용 도서로 종이책을 출판했다. 책을 구입하여 우편봉투를 쓰고 발송을 했다. 코로나로 출입이 봉쇄되다시피한 대구와 부산에 사는 외가댁 친지들께 먼저 보냈다.


엄마 어릴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할아버지는 알콜중독이 되어 동가숙 서가식 하던 분이었다. 엄마 외가에서는 어릴 때부터 고생하신 엄마를 늘 안타깝게 생각하셨고 시집가서도 가난하게 사시는 것을 마음아파하셨다. 엄마도 하나밖에 없던 동생까지 젊어 세상을 뜨자 외가댁 구들에게 많이 정신적으로 의지를 하셨다.


대구의 외사촌은 책을 읽고 우리 엄마뿐 아니라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 생각까지 겹쳐서 많이 울었다고 하며 카톡을 보내고 오랫동안 연락없이 지내던 다른 외사촌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며칠전 사무실로 부산에서 편지가 한 통 왔다. 엄마 외삼촌께서 보내셨다. 대학노트 2장에 반듯한 정자체로 쓰신 편지를 읽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  당신 조카의 이야기를 써주었다고 나에게 '고맙다, 감사하다' 고 하셨다. 이렇게 잘 살아내줘서 고맙다고 우리 모녀에게 감사하다고. 늘 우리를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신 분들인데 오히려 우리에게 고맙다 하신다. 감사하다 하신다.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하고 치민다. 나도 감사하다.


엄마의 팔순은 나에겐 아쉬운 감격이다. 힘들지만 80고개를 넘어와 주신 엄마에게 감사드린다. 다 만나긴 어렵지만 올해는 엄마를 아시는 많은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살고 싶다. 이 책으로 부족하면 그분들의 기억을 보태어 엄마의 행복한 80세를 기념하고 싶다.

https://m.blog.naver.com/alldangdang/22187426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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