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알바 쓰는 날

따로 또 같이 살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가족

by 안경숙

엄마 간병은 나의 주 업무이다. 함께 사는 막내아들은 제1 보조요원이고 옆집에 사는 남편과 두 딸은 제2 보조요원이다. 내가 그렇게 이름 붙였다. 엄마가 편찮으시고부터 우리 부부는 별거하고 있다. 여섯 식구가 세 명씩 나누어 두 집 살림을 한다. 아픈 사람 집에 두고 모두 조심하며 어둡게 사는 것이 싫어서 엄마와 나는 살던 집 옆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분가를 했다. 아이들에게도 선택권을 줘서 막내가 할머니랑 함께 산다고 따라왔다. 손자라고 유난히 예뻐했으니 받은 사랑 돌려드리는 의미에서 제대로 선택을 했다. 따로 살면서 일상의 독립을 유지하니 두 딸과 남편은 때때로 내가 필요할 때 고용하는 알바의 역할을 기꺼이 한다.


남편은 25년간 처가살이를 했다. 옛말에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않는다고 한 걸 보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사위사랑은 장모라는데 뭐가 어려우나 하겠지만 시집살이는 어렵다고 다들 알아나 주지, 처가살이는 겉은 좋아 보이나 속으로는 골병드는 생활이다. 어쨌든 내 부모가 아닌 분들이랑 산다는 면에서는 시집살이나 처가살이나 어려운 건 같다고 본다. 특히 성격이 잘 안 맞는 장모하고 같이 사는 것은 은근한 스트레스다. 우리 엄마처럼 쉽지 않은 성격의 장모와 별 탈 없이 25년이나 함께 살았으니 남편 성격도 어지간히 무던한 편이다. 엄마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25년 동안 이른 아침 따슨 밥 해 먹여 출근시키고 저녁마다 피곤에 쩔은 몰골로 들어오는 사위 턱 밑에 밥상 갖다 바쳤으니 '힘들어도 내가 힘들지 자네가 뭐가 힘든가?' 할 것이다. 어쨌든 둘 다 말도 못 하고 힘들었을 테니 이제부터는 해방시켜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출근길에 나서야 한다. 대학생인 막내는 할머니를 위해 첫 수업시간 수강신청을 안 했다. 그래서 8시 20분에 오는 데이케어센터 차에 할머니를 태워 보내고 나서 학교를 간다. 어쩌다 막내아들이 학교 행사나 특별한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침에 엄마를 센터 차에 태워 보낼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날이면 전날 밤 가족 단톡 방에 한 시간 알바 채용 공고를 한다. 공고라 하지만 출근하는 두 딸은 불가능하니 어차피 할 사람은 정년퇴직하고 출근 안 하는 남편뿐이다. 자동 채용된 남편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혜택을 제안하며 7시까지 와주도록 부탁한다. 한 블록 이웃에 사는 남편이 세수도 않고 잠이 덜 깬 얼굴로 달려온다. 수행업무 및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막내는 약속 장소로 나는 회사로 출근한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모여 밥만 먹어도 가족 캠핑 여행하는 기분이다. 아파트 너른 거실에 누워 일주일 동안의 근황을 듣고 서로의 애정을 확인한다. 같이 살며 부대끼기보다 훨씬 좋다. 은퇴 후 부부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애정 어린 별거를 권유하곤 한다. 아직 애정이 남아 있을 때 서로 독립적으로 살아보며 '따로 또 같이'의 즐거움을 만끽하라고. 생면부지의 남이 만나서 30년 가까이 함께 살았으면 신체 건강할 때 한 10년 따로 살 자유를 서로 누려보길 권한다. 나중에 더 늙고 외로워질 때 다시 만나 신선하게 살다가 죽을 때 같이 지켜주면 된다고 말이다.


나이 들어가며 각자의 부모님 마지막 돌봄의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태어나서 인간 노릇하도록 키워준 부모님이 어린아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성숙한 어른이 된 자식이 돌봐드리는 것이 받은 사랑 돌려드릴 기회다. 부부가 따로 살면 남편은 홀로 사시는 시어머니께 가끔 가서 며칠씩 함께 자며 밥도 해드리고 올 수 있고, 내키면 한 계절 같이 나며 돌봐드릴 수도 있지 않은가! 배우자에게 억지 효도 강요하지 말고. 옛날식 사고방식으로 가족은 꼭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살고 싶지 않다. 따로 살던 함께 살던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다. 아무리 힘든 세상이라도 영원한 내 편이고 언제든 힘들 때 달려가 포근하게 돌봐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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