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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26. 2024

퇴직 후 참 자유 누리기

은퇴한 선배와 동기 모임이 몇 개 있다. 어떤 이들은 직장생활 그만두면 회사쪽으로는 고개도 안 돌리겠다지만, 타인과 진한 애증관계를 가지는 성향이 아니어선지 퇴직 후  직장 동료들과의 만남도 나쁘지 않다. 삼십년 넘게 청춘과 장년의 시간을 다 보낸 곳이니 대부분의 만남도 거기서 이루어졌다. 더러 싫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비슷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다보니 두루두루 잘 지냈다. 퇴직하고도 계속 보고 싶은 사람들 그룹도 몇 있고, 많진 않지만 개별적으로 만남을 지속하는 선후배들도 있다.


평생 직장을 그만두니 심심하고 외로워서 일을 다시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다. 전일제로 일하거나 심지어는 주야교대로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서 정작 퇴직 후 바빠서 사람들 만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을 느껴 수입이 필요한 경우는 예외로 하고, 노후자금이 어느 정도 마련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는 경우도 있다. 자유로운 시간을 주체할 수 없거나,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기도 하단다. 특히 남자들이 많다. 여성들은 집안일이나 손주돌보기 외에도 좋아하는 취미생활 찾는 것에 더 진심인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직장 선후배 모임 중 하나의 최연장자 선배님은 퇴직한지가 벌써 20년 가까이 되는데 매번 뵐 때마다 활력이 넘친다. 일자리를 가졌적은 없지만 늘 다양한 만남과 문화활동, 여행, 동우회 모임, 손주 돌보기 등 여유로우면서도 충만한 퇴직생활을 하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 모임에서도 만날 때마다 좋은 전시회나 고궁, 박물관, 공원 등을 가는 것을 제안한다. 그냥 만나서 밥 먹고 차마시고 헤어지는 것보다 훨씬 풍성한 추억을 만들 수 있어 좋다. 여섯명의 멤버중 아직 현직에 있는 후배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시쳇말로 백수다. 그래도 모두가 활발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산과 야생화에 진심인 사람, 친구들과 여행에, 외국어 공부에, 숲 공부, 신영복선생 글을 사랑하는 모임, 책읽기와 글쓰기에 빠진 나 등 아주 다양한 삶의 체험에 모두 만족하고 있다.


최근 모임에서는 덕수궁을 돌아보았다. 새롭게 복원한 덕수궁 돈덕전과 잘 가꾸어진 숲 산책로를 지나 이별의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극장, 전광수 커피, 낙지볶음... 먹고 차 마시며 이야기하니 입과 눈과 귀 모두 즐거웠다. 퇴직 후 삶은 정해진 메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니 평생 회사에서 시키는 일 하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당황한다. 그러나 그 자유의 참 맛을 알게되면 매일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혼자 멍 때리는 시간조차 달콤하다. 그러려면 젊은 시절부터 연금이라든가 약간의 노후자금에 대한 준비는 필요하겠지만.


어떤 만남이든 내가 가꾸기 나름이다. 회사에서 만난 사이도 일을 떠나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 오히려 더 찐한 교류를 할 수 있다. 퇴직 후 돈을 버는 일은 않지만 그동안 깊이 사귀지 못했던 사람들의 참모습을 알아가느라 만남이 바쁘고, 못해 본 취미생활의 참맛을 느끼느라 공부에 여념없다. 은퇴는 누가 시키는 일을 하거나 맘에 안 드는 사람과 꼭 만나야 할 필요가 없는 때다. 퇴직 후야말로 참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내 인생의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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