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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19. 2024

친구들과 발리여행

친구들과 발리로 여행을 떠났다. 같은 직장에 함께 입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정년 퇴직하게 된 동기들이다. 얼마 만에 떠나는 패키지여행인지. 요즘은 자유여행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일정과 숙박을 여행사에서 처리해 주는 패키지 여행이 편안함에서는 최고다.


패키지 여행이라지만 요즘은 사전 수속 등을 인터넷으로 처리하니 각자가 해야할 절차가 있었다. 전날 밤 여행 단톡방이 시끌시끌하다. 모두들 여행 준비에 여념이 없고 의견교환이 한창이다. 전자티켓을 다운받아 비자를 신청하고 관광세를 납부하는 절차를 통과하는 것이 첫 난관이다. 돈을 납부하는데 완료가 되었는데 안되었는지 화면이 정지상태에서 꼼짝을 안한다. 비자 신청에서도 여권 사진 업로드가 안 되어 한참을 끙끙대며 수차례 시도하느라 진땀을 뺐다. '예전에는 여행사에서 다 처리해줬는데...'라고 궁시렁 대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는 영락없는 구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 대한 공부를 하고가야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 있을텐데, 여행 전에 뭐 그리 챙겨놓고 가야할 일이 많은지 전날까지 끙끙대다가 여행 떠나는 당일 아침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그래도 일단 공항에 도착하여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고 나서야 모든 집착과 우려가 한 방에 날아갔다. '에라 모르겠다. 즐기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승강장으로 들어가서 막간을 이용해서 간식도 먹고 차도 마셨다. 실제 여행의 즐거움은 출국 전 공항에서 차 마실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여정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지만 일단은 기대에 가득차 있으니까.

 

저녁에 출발하는 비행기여서 비빔밥 한 그릇 챙겨 먹고 한잠 자고 일어나니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발리의 덴파사르 공항에 내렸더니 후텁지근한 바람이 얼굴에 훅하고 부딪힌다. 비행기에서 껴입었던 점퍼를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몸과 마음의 자유를 한껏 즐길 준비를 한다.

 

발리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은 호텔에 가까워질수록 판자촌 골목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살짝 당황했다. 4성호텔이라는데 이런 낡고 외진 곳에? 허름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다. 반대편에서 차가 나오면 낭패다. 그 사이를 오토바이들이 쉴새 없이 지나간다. 차를 탄 우리들은 행여 오토바이가 차에 부딪힐까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 움찔한다. 거의 곡예에 가까운 운전으로 몇 개의 골목을 돌아간 후에야 야자나무로 가려졌던 화려한 호텔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골목길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다음날 일어나 숙소가 있는 오층에서 어제 지나온 골목 위를 내려다보니 이젯밤의 어수선함은 다 감추어지고 우거진 열대의 나무들과 파란 하늘, 그리고 꾸따 지역의 아름다운 호텔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이제부터는 일정에 정해진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호텔 뷔페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면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다. 가벼운 차림으로 차를 타면 하루 즐길 준비 끝이다. 두고 온 일이나 집안 걱정은 기억의 저편으로 접어두고. 발리섬은 신혼여행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역시 풍광이 아름답다. 아무 곳에나 서기만 하면 멋진 사진이 만들어진다. 특히 여행팀이 우리 일행으로만 구성되어 있어 더욱 자유롭다. 숫자가 많은 단체여행에서는 더러는 불쾌한 일도 생기는데 일단 그룹 구성에서부터 자유를 즐길 조건이 다 갖추어진 셈이다.

 

여행 프로그램은 흔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유명여행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울루와뚜 절벽사원, 빠당빠당 비치, 섬 크루즈 투어, 그리고 우붓 시장과 사원, 발리스윙, 마사지 코스까지 바다와 우거진 열대나무, 지천으로 핀 꽃, 바다 스포츠 액티비티까지 나로서는 잘 즐기지 못하던 동남아의 밤과 낮을 경험했다. 호텔 루프탑 풀 바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맥주 잔을 부딪히며 춤을 추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만 두드리던 범생이들에게 이런 끼가 있었다니.


자잘한 사건과 헤프닝들은 혹여 여행이 밋밋해질까 마치 일부러 짠 프로그램 같았다. 바닷가에서 인생 샷 찍다가 비싼 안경을 잃어버린 일부터 울루와뚜 사원에서 한 명의 멤버 실종사건, 한식당에 냄새나는 과일 두리안을 가지고 들어가서 먹다가 쫓겨난 이야기는 양념에 불과했다. 귀국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는 순간 마사지 숍에서 잃어버린 점퍼를 찾기 위해 cctv까지 동원한 사건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했다. 오토바이로 급송된 점퍼를 공항 진입로 대로변에서 건네받던 순간은 여행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친구들과는 30년이 넘게 같은 직장에서 일해왔지만 이렇게 가깝게 여러 날을 함께 한 경험은 거의 없다. 일로 만난 직장 사람들과는 퇴직하면 관계가 끝나기 쉬운데 그런 한계를 극복하고 오래 함께 즐기는 친구 관계로 남아 있다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은퇴하면 마음껏 여행을 다니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친구들과 날짜를 맞춰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정기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 집안 사정, 손주 돌보기, 모임과 이벤트 등으로 은퇴자의 일상도 별로 공백이 없다. 짧지만 즐거운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어 참으로 좋았고, 무엇보다 다들 건강하게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좋은 벗들과 함께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은퇴자의 가장 큰 행복이다. 이 행복이 오래 계속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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