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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02. 2019

포천 여행 분투기

이번 포천 여행은 한 마디로 하면 '생각보다 힘들다'이고, 지금 기분은 살짝 우울하다. 엄마 다리의 힘이 점점 빠지고 마음은 점점 어려진다. 아침엔 씩씩하게 출발했지만 오후에 우린 둘 다 녹초가 되어 돌아왔고 씻자마자 누워 2시간을 정신없이 잤다. 엄마는 다리도 아프고 몸이 불편하니 깊은 잠은 못잔다. 통통통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깨니 이미 저녁 시간이다.

며칠 전부터 센터에서 휠체어를 빌리고 여행준비를 했다. 이동갈비집이 최종 목적지이지만 중간에 구경할 곳을 한 군데 들르기 때문에 휠체어 없이는 따라 가기 힘들것 같아서였다. 걸음을 잘 못 걷게 되면서 휠체어의 유혹이 강하게 인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 외에는 휠체어에 태워드리지 않는다. 한 번 휠체어에 앉으면 더 이상 걷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편하면 몸은 바로 거기에 적응한다. 운동화 한 번 신기 시작하면 하이힐 못 신는 거나 같다.


갈비집 단체 버스를 타고 가는 일행을 남겨두고 엄마만 먼저 출발했다. 주소를 받고보니 포천 아트밸리이다. 천천히 한 시간이 더 걸려 도착하니 일행은 이미 와 있다. 이제는 익숙한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를 탔다. 작은 경사에도 휠체어 밀기는 상당히 힘이 든다. 게다가 케이블카까지 타고 계곡 능선 중턱까지 올라 폭포까지 구경하고 오니 엄마도 나도 벌써 진이 빠졌다. 엄마는 한사코 안 올라가겠다는걸 내가 고집을 부렸다. 언제 다시 오겠냐고 하면서. 내려오고 나서는 괜히 그랬다 싶었다. 그냥 아래서 경치나 감상할걸. 이제 체험형 여행은 졸업할 때가 되었다. 눈으로 보고 향기나 맡고 바람이나 쏘이는 것이 제격이다. 엄마는 진작 그렇게 생각한 기색이지만 내가 철없이 욕심부려 생고생만 시킨듯하다. 어쨌든 또 맛난 거 먹으러 갈 생각에 억지로라도 기운을 낸다.

매년 가는 갈비집이다. 엄마의 친목계는 서울와서 사는 친인척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일년에 한 두번 교외로 나가 고기를 먹는다. 월 모임은 늘 보리밥 뷔페, 고기 모임은 몇년째 이동갈비다. 변화를 싫어하는 어르신들만 모였다. 아니 한 두 분 새로운 걸 원해 변화를 시도하지만 늘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나이들면 익숙한 것이 좋은가 보다. 왜 그런지 사람도 오래 만난 사람이  좋고 고기도 늘 먹던 게 좋은 거는 이 모든 것에 정이 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들 고만 고만 빠듯하게 사느라 자주 못 먹던 소갈비를 오늘은 원없이 먹는다. 모아둔 곗돈을 이날 하루에 왕창쓴다. 큰 거 안 바라니 해외여행쯤이 아니라도 만족한다. 배불리 고기 먹고 쾅쾅 울리는 노래방 기계에 장단 맞춰 노래 한 바탕 부르고 나면 더 욕심없다는 표정들이다. 엄마는 이제 목소리가 안나와 노래도 못 부르고 춤도 못 추니 흥이 나실리 없다. 신나게 노는 어르신들을 뒤로 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엄마는 아직 타인의 시선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병나서 제대로 못 움직이는 게 구차스럽고 인사로 하는 염려의 말도 듣기 부담스럽다. 눈치없는 분들은 나더러 '니가 고생이 많다.'라며 위로의 인사까지 챙긴다. 엄마 기분을 생각하면 그런 말은 안 하셨으면 싶지만 유난히 천진하신 분들이  꼭 한 두분씩 있다. 나는 애써 밝게 말을 받아주고 농담도 하며 모르는 척 눙치고 지나간다.

힘들고 짜증도 낸 하루였다. 삶은 '인간극장'이나 '아침마당' 같은 TV프로그램으로 볼 때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말로 표현되지만  필터를 빼고 현실을 보면 거칠고 신산하다. 외로움, 고독, 아련함, 애잔함,그리움, 애틋함 이런 단어는 생각속에서 나온 말이다. 일상의 현실을 계속 살아야 할 때  우리 감정은 화나고, 짜증나며,지겹고, 지치며, 구차스럽거나 꼴도 보기 싫을 때도 있다. 필터 없이 원본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우리 숙제이지만 쉽지 않다. 시를 읽고 상상을 하며 아름다운 말들을 마음에 채우면서 노력하며 살아야 그 숙제도 견딜만한 게 된다. 그러나 꼭 명징한 의식으로만 겪어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이게 나비가 꾸는 꿈인지 내 꿈 속의 나비인지 구분할 수 없이 구름 위에 뜬 기분으로 산들 누가 나무라겠는가?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인데.

엄마에게 맘 속으로 속삭인다.

"엄마! 오늘 고생 많았어. 그래도 시간이 흐른 후에  생각하면 슬프지만 '그 때 놀러가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날 때가 언젠가는 올거잖아. 그냥 오늘 하루 하루 잘 살자."

"아 참! 매일 하는 반성이지만 짜증낸거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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