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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03. 2019

파마하고 진 빠진 날

회사 안가는 토요일이 가장 느긋한 시간이 되어야 하지만 직장생활이 꼭 원칙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지역축제에서 홍보 캠페인을 하기로 했으니 사람 많이 모이는 휴일에 가야 효과가 있을 터. 시간맞춰 나가려고 아침부터 서두른다.


며칠전부터 파마하고 싶어하는 엄마에게 오후에 미장원을 가자고 약속했다. 오늘 하루도 꽉 차겠네 생각하며 준비를 하는데 엄마방 화장실에서 뭔가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옷 갈아 입다 말고 달려가니 세상에! 엄마가 옷을 입은채 샤워기로 머리를 감고 계신다. 철석같이 약속 했건만 미용실 가신다고 혼자서 행동을 개시하신 것이다. 갑자기 밑에서 화가 벌컥 올라온다. 거친 손길로 머리를 감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내 옷도 다시 갈아입은 다음 한참을 블라블라...  잔소리 폭풍을 몰아친다. 그리고 꼼짝 않고 있겠다고 약속받고 손도장까지 받는다.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던 알바생 남편과 막내의 행동이 내 눈치를 보며 부산스러워진다. 가방! 척. 지갑! 척. 하나씩 잊어버린 물건들을 말이 떨어지자마자 둘 부자가 내 손에 갖다 놓는다. 후다닥 쌩~~ 문을 닫고 나섰으나 이미 늦었다.

지하철을 타고 생각하니 좀 늦어도 되는데 왜 그렇게 또 열을 냈는지  하루 열 두 번도 더 후회를 한다. 이제는 후회하는 것도 익숙해져서 '인간이 그렇지, 그 정도도 후회 안 하면 부처님이지 그게 인간이야? 매력없어!' 스스로 코미디 대사를 쓴다. 어쨌든 헐레벌떡 뛰어가니 기다리던 직원들이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처럼 박수를 치며 맞아 준다. 직원들에게 엄마 모신다고 항상 공지를 해둔 효과다.


회사에서 평소 자기 개인 생활을 개방하면 이런 효과가 있다. 집안일이라고 부끄러워하고 감추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고 '저 사람은 왜 저래? 왜 맨날 늦어? 끝나면 쌩하고 사라지고, 공동체 마인드가 안되있어!' 하는 오해를 산다. 어려운 일 있으면 이해받고 싶은 주변에 알릴 필요가 있다. 주위 사람들 다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


행사 무사히 마치고 점심도 같이 맛나게 먹고 해산했다. 또 부리나케 달려 집으로 온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엄마 모시고 미장원으로 간다. 엄마 하는 김에 나도 빠글이 파마를 한다. 장장 3시간 가까이 경과되니 엄마는 녹초가 되었다.


"엄마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아침에 벌컥거리며 화내서 미안해요! 맨날하는 사과라고 시큰둥 하지말고 예쁘게 받아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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