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진단을 받다

엄마의 몸은 조금씩 느려지고 점점 더 굳어간다

by 안경숙



정신과 의사 김혜남은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글씨를 쓰고 얼굴 표정을 짓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병.


그래도 그녀는 절망의 시간을 차고 일어나 하루를 살았고 또 하루를 살았다. 그렇게 15년을 살아왔다.

15년을 살면서 진료와 강의를 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다섯 권의 책을 썼다.


누군가 물었다. 병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의사로 살고 싶다던 꿈을 포기하게 되어 속상하지 않냐고.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게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살아가는데 걱정이 별 도움이 안 되듯 후회 또한 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 가지 후회되는 건 인생을 숙제처럼 해치우듯이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다.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 돌아갈 거라는 착각 속에 앞만 보며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버렸다. 아이 키우는 기쁨도, 환자를 돌보는 성취감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닦달하듯 살았던 것이다."


병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세 시간마다 약을 먹지 않으면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경우도 있고 살이 빨갛게 짓물러도 혼자 옆으로 돌아눕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녀는 이렇게 결심한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더 큰일을 당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컨디션이 좋은 날은 좋은 대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그런대로 하루를 재미있게 보내려고 애쓴다."


10년 전쯤인가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고 하셨다. 차멀미도 아닌데 구토가 나오는 것에 갑자기 불안감이 들었다. 언젠가 동두천 이모가 뇌출혈 났을 때 구토했던 것을 기억하고 엄마와 나는 놀라서 병원으로 갔다. 대학병원에 가서 뇌 사진을 몇 판을 찍고 피검사, 이것저것 복잡한 검사를 한 후에 엄마는 약간의 뇌출혈이 있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우리 머릿속의 뇌혈관은 아주 미세하고 예민해서 작은 충격에도 핏줄이 터질 수 있는데 이것이 뇌출혈이라고, 엄마는 뇌의 아주 미세한 가는 혈관에서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고 진단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 출혈은 멈추었으며 약을 먹으면 이것이 뇌 안에서 응고돼서 치료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한 동안 약을 먹고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셨다.


삼 년 전쯤 엄마가 자꾸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어떤 분과 말다툼을 하게 되었는데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상대방 말에 한 마디도 대꾸를 못했다고 속상해서 들어왔다. 말을 하려는데 입안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나오지가 않는다고 하면서 평소에 말할 때 문제가 없는데 맘이 급하면 말이 안 된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깨져서 왔다. 요새 왜 자꾸 발을 헛디디는지 모르겠다며 살이 쪄서 그런가 보다 한다. 나는 “엄마 서두르지 좀 마. 엄마는 성격이 급해서 큰일이야” 하고 넘겨버렸다.


어느 날 엄마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병원을 가보자고 하셨다. 뭔가 몸에 이상이 느껴지신 것 같았다. 정기적으로 다니던 종합병원 신경과를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정밀검사를 해보자고 하신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검사 결과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파킨슨병’이라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걸린 병 아시죠” 하면서 뇌 사진을 보여준다. 뇌에는 정신을 관장하는 부분과 운동신경을 관장하는 부위가 있는데 엄마는 운동신경을 관장하는 뇌세포의 상당 부분이 죽어있다고 한다. 대부분 노화와 함께 오는 병인데 원인은 모른다고.


그때부터 책에 나온 것과 똑 같이 증상이 진행되고 있다. 말이 어눌해지고, 걸음이 불편하고, 손에 힘이 없어지고…….

“엄마 도서관 한 번 가볼래?"

"내가 뭐 하러? 네가 밤낮 집안일 팽개치고 도서관 도망가는 꼴도 보기 싫은데 “

"거기 행복학교라고 있는데, 한글도 배우고 친구도 사귀면 좋잖아!""다 할 일 없는 사람들 호강 놀음이여! “

얼마 전까지도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엄마가 손놀림이 둔해지고 말이 어눌해지면서 급격히 우울해하셔서 다시 한번 가시기를 권했더니 "데려가 보던가!" 하시며 따라나섰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가 도서관 직원이 엄마를 보시더니 "여기 오시는 분들은 다 졸업장 따려고 엄청 열심히 하시는데, 하실 수 있겠어요?" 하고 자꾸 나한테 묻는다. 옆에서 못 들은 척 있던 엄마가 "여기는 나한테 해당되는 건 없다! 그만 가자!" 하며 일어선다. 창피하게 자존심 상할까 두려운듯하여 그냥 모시고 나왔다. 그리기를 하면 좋다고 TV에서 보셨는지 색칠놀이를 사다 달라고 한다. 컬러링북을 사다 드리니 어렵다고 하면서도 열중이셨다.


몇 년 전에만도 수영도 하시고 색칠공부도 열심히 하셨는데 발걸음은 점점 둔해지고 말도 더 어눌해지셨다. 걸음이 자유롭지 못하니 작은 턱에도 걸려 넘어진다. 급기야 2년 전 밤길에 혼자 계단을 내려가시다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셨다. 왼쪽 팔뼈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나니 밖에 나가시기를 주저한다. 남들 보기 창피하다고 한 달간 집안에만 계셨다. 더 이상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이 되어서야 아침저녁으로 잠깐 공원에 다녀오시는 것이 운동의 전부였다. 내가 근무하는 지방으로 불편한 몸으로 따라 내려갔을 땐 낮에는 아파트에 감금된 신세가 되었다. 종일 기다리다 6시가 되면 전화를 하신다. “언제 오냐?” 묻다가 야근이라도 한다고 하면 영락없이 실망한 기색이 전화로 전해진다. 그 당당하고 꿋꿋하던 엄마가 조금씩 자신감이 사라지고 의존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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