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경숙 Jun 12. 2019

한 번이라도 행복했음 좋겠네

나이 환갑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글도 쓰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살고 싶기도 하다. 그 욕망이 충돌하여 어떤 것을 버려야 할 지도 모르겠고, 또 어떤 것을 먼저하고 나중에 해야할 지 정하는 것도 어렵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서 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다 내려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자식들에게도 신세지지 않는 대신 나 살고 싶은 데로 살 거라고 늘 선언을 하고 다닌다.
 
엄마는 평생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신 적이 있을까? 언제나 해야할 일만을 하고 살다보니 당신 내부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을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없이 동생을 돌보느라고 하고 싶은 것 못하고 살았을 것이고, 결혼을 하자마자 남편마저 먼저 세상을 떠나니 자식 데리고 먹고 살기 바빠서 하고 싶은 일 따위는 생각도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 키워 시집보내고 나니 서운했을 테지만 ‘이제야 말로 자유롭게 훨훨 살아야겠다.’ 생각할 때 손주들 키워줘야 한다고 짐을 지우니 어느덧 30여년이 후딱 지나 늙은 몸은 병이 점령하고 말았지 않은가?
 
‘엄마 뭐 먹고싶은 거 없어?’ ‘엄마 어디가고 싶은데 없어?’ ‘엄마 입고 싶은 옷 없어?’ 엄마대답은 모두 “없다”이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이다. 평소에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서 그런지 뭔가를 사주면 흔쾌히 “아이구 좋다. 잘 쓰마” “참 곱구나. 고맙다” “여기는 어찌 알고 왔냐? 참 맛나구나” 이렇게 대답하시는 적이 없다. “쓸데없이 돈 쓸 생각하지 말고 얼른 얼른 돈 모아서 애들 가르칠 생각이나 해라“하신다. 길게 생각하지 말고 주는데로 모른 척 좀 누리고 사시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생일이나 명절 때 옷을 사가지고 가면 “이건 얼마줬노? 모양도 없는걸 왜 그리 비싸게 샀노? 어데서 샀노?”하신다. “어데서 샀으면 어쩔건데?”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면 “가서 바꾸든지 할라고 그런다.” 하시면서 가게에 가서는 결국 못 바꾸고 돈으로 찾아오시고 만다. 그래서 “다시는 옷 안 사올거야. 엄마가 가서 사입어”라고 궁시렁거리면 “누가 옷 사다 달라카드나?”하시며 언짢아 한다. 명절이라고 뭐라도 사시라고 돈을 드리면 집안 살림에 써버리거나 저축을 한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해도 안 고쳐진다.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비싼데 고기도 양도 적고 집에서 고기 사다 구우면 양이 얼마나 많은데”하시고, 아이들과 함께 페밀리 레스토랑이라도 가자고 하면 ‘나는 거기 뭐 먹을것도 없더라 값만 비싸고 나는 안 갈테니 혼자 두고 가라’ 하시니 결국은 온 식구가 다 못가고 만다.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기라도 할라치면 매사에 어설픈 내가 부엌에서 설치기만 하고 결국은 엄마가 같이 땀을 흘리며 일을 하시게 되니 나는 그것이 화가 난다. 다른 집 엄마들처럼 누가 사준다고 하면 음식점에 우아하게 앉아서 대우받으면서 드시면 좋을 텐데 식당에 가서도 연신 아이들 먹으라고 접시에 담아주고 온 식탁의 서빙을 엄마가 하려고 하신다. 마지막에는 다 먹은 음식접시를 식당집에서 설거지 하기 좋게 비워서 한쪽으로 쌓아주기까지 하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속이 상한다. 왜 대우해주면 가만히 앉아서 받지 못하시는지...
 
엄마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오늘 또 하루 행복하겠구나! 하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실까? 어릴 적 엄마가 장사하실 때 저녁마다 우리집에 모여 아지매들한테 옷 구경을 시켜주고 동네 대소사를 이야기할 때 엄마는 늘 활짝 웃고 있었다. 추운 겨울 보따리를 이고 장사를 다닐 때도 기운없거나 찡그리고 사시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릴 적 내 기억속의 엄마는 늘 활기차고 밝은 모습이었다. 그때 엄마는 행복하셨을까?

나는 어릴 때 생각하면 가난하게 살았어도 뭔가 재미있고 기분이 좋아지는데,,,, 비참하고 속상했던 순간도 비오는날 창 너머로 내다보듯 아련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던데. 엄마에게 그 시절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어려운 시절이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이제 혼자서는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시간속에서 엄마는 살아온 세월의 덧없음에 괴로워 하실까? 평생 남의 집 전전하며 제때 밥도 제대로 못먹고 살다가 이제 살만해졌는데...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엄마는 못 누리고 사는 것 보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이 하실 역할이 없다고 느끼시는 것 때문에 더 힘드실 것이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딱 한번이라도 ‘정말 행복하구나! 태어나길 참 잘했어.’ 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보고 싶다. 뭘 해서라도 꼭 한 번 그렇게 느끼게 해드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엄마가 삐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