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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13. 2019

순대라도 사가지고 들어가자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쯤이면 입이 출출하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골목입구에 분식집이 있는데 그 근처에 오면 더 시장기가 돈다. 떡볶이, 순대, 오뎅을 판다. 순대 2인분을 사서 덜렁덜렁 들고 들어간다. 일찍 들어온 막내가 맛있게 먹는다. 반쯤 남은건 엄마 차지다. 나는 막상 먹고 싶어 샀지만 집에 오니 심상하여 두개만 먹었다.

엄마는 어디 다녀오시면 늘 손에 뭔가를 들고 들어오셨다. 남의 예식장에 가셔서도 상에 놓인 음료라도 핸드백에 넣어오신다. 그것도 한 병이 아니고 꼭 세 병을. 손주가 셋이다보니 뭐든 세 개이상을 가져오시고 종류도 가리지 않으신다. 쇼핑센터에서 사은품으로 조잡한 장난감을 받아도 꼭 우겨서 세 개를 받아내신다. 하나 주면 애들 싸움난다고 하면서.....
 
나는 습관이 안되서 평소에 뭘 사들고 오는 법이 좀체 없다. 유일하게 사오는 경우는 회사에서 1박이상 교육이나 MT를 다녀올 때이다. 대부분 고속도로를 통해 오기때문에 휴게소를 들르는데 거기에서 품목도 항상 똑 같이 '호도과자'를 산다. 그것도 선물용으로 박스에 든 것 말고 금방구워서 봉지에 담아주는 호도과자. 조금 식더라도 봉지에 수분이 남아있어 호도과자는 딱딱해지지 않고 봉지만 축축해지는 2,000원짜리 두 봉지를 사서 가방에 넣어온다. 아이들은 어릴 때 매번 그 호도과자를 사다줘도 그 때마다 너무나 반갑게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러고보면 참 무심한 엄마였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곳마다 여러가지 특산품도 많고 휴게소에도 다른 품목도 많이 있었건만 별 고민없이 늘 호도과자를 샀던 것 같다. 질리지 않고 늘 맛있게 먹어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한 번 못하고.
 
센터에서 오신 엄마는 매번 그렇듯이 진이 빠진 모습이다. 들어오자마자 거실 식탁에 앉히고 순대를 드렸다.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한참에 드신다. 아기새 먹이 챙기듯 평생을 먹을거리 싸들고 다니시던 엄마를 생각하면 매일 빈 손으로 달랑달랑 집에 들어왔던 것이 후회스럽다. 참 엄마에게도 무심한 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산다는 것이 별것 없을텐데, 그저 집에 갈때 길거리에서 과일 한봉지 사들고 들어가는 것이 재미난 삶이지 싶다. 항상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고, 상대가 어떤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지 깊이 느껴볼 틈도 없이 무심하게 지나친 시간들이 참으로 아쉽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잘하고 살 시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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