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경숙 Jun 14. 2019

국도변에서 고기 구워 먹이는 할머니 사랑

때는 2005년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영주 아버지산소-울진 구수곡 휴양림-삼척해수욕장-대관령양떼목장을 6박7일동안 도는 강행군 코스였다.

해수욕장에서는 막내 챙기기 담당을 맡아 밀려오는 파도와 싸우며 지칠대로 지쳤다. 그래도 엄마는 마지막 에너지를 끌어모아 파도와의 투혼을 불살랐다. 삼남매를 바닷가로 데려갈 때는 엄마와 우리 내외는 완전 비상작전이다. 튜브를 탔다고 해도 넘실거리는 동해안 파도는 순식간에 사람을 집어 삼킨다. 우리는 1호담당제로 아이들을 한 명씩 맡아 완전수행 모드로 들어간다. 음식을 먹을 때나 쉴 때도 눈은 언제나 물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박혀있고 조금만 먼거리로 들어가면 즉각 동반입수한다.

모래탑을 쌓고 놀기도  하는 두딸의 담당을 맡은 나와 남편은 한 숨을 돌리고 파라솔 아래서 쉬기도 하지만 막내 담당인 엄마는 숨돌릴 틈도 없다. 막내가 계속 물에서 안 나오니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아예 옷을 입은 상태에서 본의 아닌 짠물  해수욕을 원없이 했다.

마지막 양떼목장을 내려오면서는 모두들 기진맥진했다. 그래도 엄마는 제일 씩씩하게 등반대장처럼 앞장을 섰다. 이제 여행을 마무리 하고 집으로 간다는 생각에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짜내어 차로 향한다.

"할머니 배고파요! 허기져서 못 가겠어요!" 집으로 차가 출발해서 국도를 막 타기 시작했을 때였다. 엄마는 운전하는 남편에게 길가로 차를 대도록 했다. 막 지나쳐온 길에 시골 정육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서 고기하고 번개탄 사오너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온 길을 되돌아 걸었다. 8월초 한낯의 불타는 태양에 살이 지글거리며 타는 듯 했다. 차가 멈춘 곳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새로 지어 아직 오픈 안한 간이 휴게소인듯 빈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거기에 차를 댔다. 그 다음은 TV에 나오는 '자연인' 촬영장이나 진배 없었다. 가게에서 산 번개탄이 불이 붙지 않는 불발탄이었다. 트렁크 뒤에 실린 화덕과 숯은 무용지물이 될 판이다. 엄마는 갑자기 빈 건물 주위를 돌며 잡목의 잔 가지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화덕에 가지들을 쌓고 불을 붙이고 온 가족이 부채질을 했다. 드디어 숯에 불이 붙었다.

검댕이가 더덕더덕 붙어 질기디 질긴 멧돼지 바베큐를 한낯 땡볕에 달구어진 주차장 바닥에 앉아 먹으며 아이들은 기운이 뻗쳐 신바람이 났다. 남편과 나는 땀을 콩죽같이 흘리며 엄마의 손주사랑을 이 악물고 참았다. 엄마는 뭔 아랑곳이냐는 듯 바닥에 철푸덕 앉아 열심히 고기를 구웠다. 애들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점만 봐도 저절로 배부른 듯 엄마는 고기 몇 점 집어 먹을 새도 없이 연신 애들 접시에 고기를 담는다. 그 사랑 생각한다면 지금 애들이 할머니에게 하는 것은 효도 근처에도 못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대라도 사가지고 들어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