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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15. 2019

엄마의 식물농사, 사람농사

강원도에 농가주택을 마련한 동료의 초대를 받았다.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이 모여 찾아갔다. 거실 통유리 밖으로 앞산이 보이고 옆에 개울이 흐르는 좋은 위치였다. 꽤 넓은 밭이 딸린 집이다보니 그 친구는 거의 반 농사꾼이 되어 있다. 맛나게 먹고 하루를 자연속에 즐기고 왔다. 올 때는 모두 밭에 들어가 상추를 뜯었다. 집에 와서 펴놓고 보니 욕심을 내서 며칠을 먹어도 남을 분량을 가져왔다. 하루종일 손주 삼남매와 어찌 보냈는지 묻지도 않고 상추부터 펴놓으니 엄마가 관심을 보이며 이리저리 뒤적이신다. 야채농사에 욕심부리던 엄마 생각이 문득 떠올라 혼자 웃었다. 별걸 다 닮았네 싶다.

아이들 어릴 때 교육 목적으로 농협에서 분양해주던 주말농장을 신청했었다. 한 구획에 만원인가 얼마를 주고 얻는데 엄마가 욕심을 내서 두 구획을 신청했다. 처음 방문해서 밭고랑 고르는 것을 보시고 "손바닥만한데 뭘 심는다고."하시면서 한 구획을 더 달라고 하신 것이다. 주말마다 다니면서 거름섞고, 모종 심고, 김 매고, 지지대 세우고, 배추벌레 잡고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엄마는 어찌나 열심인지 우리랑 가는 주말 외에도 주중에 버스를 갈아타면서 두  번은 더 가시는 것 같았다. 옆집 밭이 더 짙푸르고 무성하면 경쟁심이 발동해 더 열심히 가꾸었다. 아마 그 농장에서 농사 젤 잘 지은 집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몇 번 신나게 따라 다니더니 시들해지고 어른들 노동판이 되었다. 나는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지만 엄마 열정에 삼년이나 했다. 삼년동안 우리집 골목 쌈채소는 엄마가 다 공급했다. 매번 받아먹은 이웃들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할머니 드시라고 빵이며 박카스 상자, 맛난 과자, 과일, 심지어는 휴지, 식용유 까지 들여 보냈다. 우리는 이웃들이 부담스러워할까봐 그만하셨으면 했지만 엄마는 꼭 일주일에 두번씩 농장을 다녀오면 비닐봉지 일곱개를 놓고 쌈채소, 호박, 얼갈이, 옥수수까지 고르게 챙겨넣어 이웃집을 한 바퀴 돌았다. "친환경이예요"라는 말을 꼭 끼워서 말이다.

주말농장을 그만두고는 집 옥상을 아예 밭으로 조성했다. 널찍하게 비닐장판을 깔고 사면을 블록으로 쌓았다. 매일 아침 중랑천변 산책을 나갈 때면 비닐봉지를 들고 나가셨다. 남의 눈을 피해 구청에서 조성해놓은 고수부지 유채밭 한 구석에서 흙을 퍼왔다. 몇 번을 다니며 흙을 날라 옥상 밭에 고르게 폈다. 옥상 밭을 얼마나 잘 가꾸셨는지 온갖 채소는 물론 토마토까지 제법 따 먹고 가을에는 김장을 할 정도로 배추도 키웠다. 몇 년을 하다가 옥상 방수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있어 농사를 접었다. 그만둘 때는 흙이 너무 많아 돈 주고 사람을 사서 버렸다. 마침 옆집이 헐고 신축공사를 해서 거기 일하러 온 분에게 막걸리값이라고 챙겨드리고 부탁을 했다.

엄마는 뭘 하든 남보다 못하는 꼴을 못 보고, 밭을 하나 가꿔도 온 에너지를 다 쏟아 열성을 다하던 분이었다. 식물 농사도 그러니 사람농사야 더 말해 뭣하겠는가? 그렇게 키운 후손이 무럭무럭 자라 다 성인이 되었으니 엄마 농사는 대풍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앨범을 거실에 꺼내 놓았더니 연 이틀 열심히 앨범을 보신다. 지나간 추억이 풍성하나 엄마는 아마도 그 손주들 결혼시켜 자식 보기까지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 욕심을 닮았지만 나는 이만하면 대풍이라고 만족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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