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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16. 2019

살림 맛은 몰라도 글 멋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네

오랫만에 온 가족이 모두 모였다. 비좁은 4인용 식탁에 여섯 명이 옹기종기 앉아 저녁을 먹었다. 메뉴라고해야 특별할 것도 없이 돼지목살구이에 상추쌈이다. 한 가지 보탠 것이라면 즉석요리 까르보나라 한 접시 정도다. 볼이 미어져라 상추쌈을 싸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엄마는 묵묵히 식사만 하신다.

저녁을 먹고 과일과 함께 영월여행에서 사온 와인 한 병을 땄다. 레드와인은 고기요리와 함께 먹는 것이 법도일텐데 그런 것은 아랑곳없이 고기식사 다 마치고 와인파티는 따로 우리식으로 한다. 까나페를 만든다고 참크래커도 사고 슬라이스햄, 치즈,키위를 갖추었다. 마침 떨어진 방울토마토 대신 냉동 블루베리 녹인 것을 썼다. 막 파티를 시작하려고 하는 데 아뿔싸! 와인잔이 없다. 하는 수없이 유리잔, 머그컵,1회용종이컵까지 동원되었다. 운치가 확 사라지고 식품코너 와인 시음장처럼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 식구들은 아무 상관없이 즐기고 있다.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본 때 없이 마구 컸던 나와는 다르게 제대로 누리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제는 없이 사는 것도 아닌데 살림살이 가꾸는 것에 관심이 적다보니 제대로 갖추고 살지 못한다. 엄마와 분가하며 그릇 몇 개와 최소한의 부엌살림만 옮겨왔다. 부엌용품중엔 수퍼 사은품이 대부분이라 모양도 무늬도 다 제각각이다. 반찬통이나 보관용품들도 내용물 다 쓴 빈통들을 재활용한다. 포장용기가 너무 튼튼하여 버리기 아까워하다보니 별도로 보관통을 살 필요가 없다. 그나마 한 세트가 제대로 갖추어진 접시들과 밥식기 국대접은 30년전 결혼할 때 엄마가 남대문시장 가서 사주셨던 행남자기와 한국도자기이다. 어찌나 튼튼한지 몇 개 깨지지도 않았다. 저쪽 집에 고이 모셔진 크리스탈 잔들도 다 내 신혼 살림들이다.

쓸데없이 멋부린다고 돈 쓸 일 있냐는 것이 엄마의 철학이라 나는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아쉬운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니 그러면 안될 것 같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돈도 써본 사람이 물건 고르는 감각도 있고 멋을 알아보는 안목도 생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예쁘고 멋진 거 사 쓰고 집도 꾸미고 살라고 한다. 그래도 할머니와 20년을 넘게 같이 살았으니 닮지 않았을 리 없다. 돈 쓰는 거 벌벌 떨고 '싼 거' '싼 거'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을 보면 저희들이 돈 벌어도 제대로 누리고 살지 염려가 된다. 안목도 촌스럽고 멋없는 사람이라 소리들을까 안쓰럽다.

"딸들아, 아들아 멋지게 살기 바란다. 쓸데없이 낭비하는 것은 싫지만 너무 아껴 궁상스러운 것도 좋지는 않다. 엄마는 살림이나 외모 멋은 못 배운 핑계대고 포기하고 살지만 글 멋은 아는 사람으로 남은 생은 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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