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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11. 2019

13 엄마가 삐쳤다

엄마가 삐쳤다. 아침에 한바탕하고 났더니 방문을 닫고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24시간 닫지 않는 방문을 닫고 계신다. 빼꼼이 열고 들여다보니 TV를 켜놓고 보시는지 마는지 돌아누워있다.     


사단이 벌어진 건 새벽5시. 새벽이라고 하지만 낮이 길어 바깥은 벌써 환히 밝은 시간이다. 자다 깨 볼일 보시는 걸 도와드린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인데 방에서 탁탁 소리가 난다. 날 부르는 소리가 아니고 보행기 움직이는 소리다. 나는 못 들은 척 누워있었다. 더러는 혼자도 볼일을 잘 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쏴아~~하고 세면대 물 트는 소리가 났다. '세수까지 하고 나오실려나보네'하며 그대로 있었다. 물소리는 계속되고 급기야 샤워기 트는 소리가 났다. 그제야 놀라 뛰어 들어갔다. 예감이 적중이다. 또 옷을 입은 채 샤워기로 머리를 감고 있다. 엄마 생각에는 머리에만 물을 뿌린다 생각하지만 허리를 숙이지 못하는 엄마는 옷을 입은 채 샤워를 하고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또 순간적으로 블라블라블라~~~한바탕 퍼부어 댔다.      


상황을 수습하고도 기분이 회복되지 않아 엄마에게 말을 붙일 기분이 아니다. 젖은 옷을 빨래 통에 담고 그냥 침대로 와서 누워버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가 혼자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식탁에 눈을 감고 앉아 있다. 배가 고프신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약을 챙겨 드리고 아침식탁을 차렸다. 그런데 엄마가 눈을 감고 밥을 드신다. 처음엔 기분을 풀어드리기도 할겸 사진도 찍으면서 장난을 걸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눈을 감고 식사를 계속하신다. 왜 그러시냐고 몇 번을 물었더니 눈을 감은 채 조그맣게 말한다."보기 싫어서". 나도 만만치 않다. 엄마 눈을 손으로 벌려 뜨게 하고 "내가 사라져 줄께"라는 심한 말을 하고 거실 침대에 가서 벌렁 누워버렸다. 등 뒤로 보니 식사를 하고 계신다. 다 드시고 일어나는 것을 도와드리니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으신 것이다.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 엄마가 먹다 남긴 밥을 먹는다. 그리고는 말없이 내 할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순간들이 많을 것임을 알고 있다. 저지르고 반성하고 또 새로 시작하고, 끝없이 되풀이 될 여정이다. 아니 끝은 있겠지. 그래도 괜찮다.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북돋운다. 글을 쓰는 이유도 그렇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가 필요하면 나는 혼잣말처럼 글을 쓸 것이다. 글쓰기는 나에게 반성이고 위로이며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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