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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n 10. 2019

막내야 너 없으면 어쩔 뻔 했니?

변함없이 분주한 아침이다. 오늘은 말 그대로 일품요리로 아침 식사를 차린다. 시간이 촉박하여 잘 먹지 않는 반찬은 아예 꺼내지 않고 딱 한가지 요리만 냈기 때문이다.엄마와 막내 둘 다 좋아하는 카레라이스다. 그것도 어제 먹다 남은 걸로. 둘이 아침을 먹는 사이 어제 개수대에 던져놓은 설겆이를 한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막내 수업시간을 물어본다. 1교시가 있는 날은 온 식구가 부산스럽다. 같은 시간대에 다같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도 먼데 기꺼이 할머니 차 태워보내고 간다. 1교시 수업에 가끔 늦는다고 해서 어쩌냐 걱정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교수님이 1교시는 좀 봐 주셔."하며 나의 부담을 덜어준다. 하기야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은 시간 맞춰가고, 돈 내고 수업 듣는 사람이 좀 늦어도 되는 게 이치에 맞다. 그만큼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는 거니까. 별 합리화를 다 한다.

막내가 같이 안 살았으면 어쩔뻔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바쁠 땐 고양이 손도 빌린다'는 말이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 막내에게 손 내밀 때가 많다. 엄마랑 둘이 따로 살 결심을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아이들이 할머니를 지겨워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아픈 사람 돌보며 언제나 낯빛을 순하게 가지긴 어렵다. 자식도 그런데 하물며 한 다리 건넌 손주들이야 말해 뭣하랴. 그런데 세 사람이 사니 부담이 분산되고 조금씩 숨통이 트여 한결 해내기 쉽다. 다행히 막내도 아직은 잘 해주고 있고 무엇보다 엄마가 막내를 보면 마음이 안정이 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둘째까지 낳고 회사를 다니면서 휴직을 못했다. 당시는 휴직을 한다고 하면 '이제 승진은 포기한거지?'하는 반응이었다. 평생 다닐 직장인데 승진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회사일이 지겨워질 때쯤 승진을 해야 그래도 버텨나갈 수 있는 게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이다. 그런데 아이 키운다고 자리를 비우면 평가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니 누가 선뜻 휴직을 하겠는가? 나도 둘째까지는 휴직을 않고 버텨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엄마가 셋째를 낳았으면 하는 압력을 줬다. 정확히 말해서 아들을 낳기를 바랬다.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아이 셋에 직장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전 근대적인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막내를 낳았다. 셋째는 의료보험 혜택도 못받던 시대에 4.6kg 우량아로 태어나서 온갖 어려움을 경험하게 해준 아이지만 할머니와 온 가족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주었다. "할머니 남녀 차별 하지 마세요!" 당당하게 외치는 두 누나 밑에서 순둥순둥하게 자란 막내는 이제 모든 가족의 힐링 상담사가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없이 반찬도 없는 아침 밥을 할머니와 묵묵히 먹고 있는 막내의 뒤통수에 대고 혼자 속으로 말한다. "막내야 너 없으면 어쩔뻔 했니?" 누나들이 또 깃발들고 차별철폐를 외칠지도 모르겠네. 그땐 할머니가 늘 변명했던 말을 들려줘야지. "남자라서 챙기는게 아녀! 막내니까 하나 더 주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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