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한 엄마는 하루 종일 돌봄을 받는 데이케어를 가시게 되었다. 사고 나기 전까지는 집에서 요양보호사와 산책도 하고 노래교실도 갔었는데 이제는 안 된다.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케어는 어른들의 유치원과 같은 곳이다. 아침에 센터 차가 엄마를 태우러 오고 저녁에도 차로 집에 데려다준다.
센터에 처음 가던 날은 전날 밤부터 준비를 했지만 등원하기까지 두 시간이 걸렸다. 세수하고 식사하고 양치하고 옷 갈아입고 준비물 챙기고, 어린이 유치원 가는 거하고 똑같다. 내 출근 준비까지 해야 하니 맞벌이 부부의 출근전쟁 모습이다.
센터 차를 타고 유리에 대고 손 흔드는 거 보면서 눈물이 났다. 정신없이 준비하며 다그치기까지 했던 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아이들 어릴 때 얼른얼른 안 하고 늑장 부린다고 야단치고 입에 밥숟가락 밀어 넣으며 출근 준비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엄마가 돌봐줘서 지금처럼 정신없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막내가 할머니 잡아주고 쓰레기 버려주고 빨래도 널어주니 도움이 된다.
엄마를 등원시키고 부리나케 튀어나왔으나 차는 왜 이리 막히는지! 출근시간 땡 하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나는 보던 자료 그대로 집어넣고 칼같이 일어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만 갈아입고 부엌으로 간다. 아침에 처박아둔 설거지를 한다. 쌀 씻어 담그고 내일 아침을 준비한다. 반찬 만들기 유튜브를 틀어놓고 나물반찬 두 가지 만드는 사이 엄마가 도착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탈진 상태다. 병원에 누워있던 사람이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종일 적응하느라 안간힘을 쓴 모양이다. 대충 닦고 약 드시고 침대에 눕혔다. 다리가 부었다. 주물러주니 가쁜 숨을 쉬며 한참을 뒤척이다 잠드셨다.
교육파트에 근무하던 시절 워킹 맘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한 적이 있었다. 아이 키우기 위해 휴직했던 엄마들이 복직했을 때 직장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육아 맘들을 위한 직장교육이 거의 없던 때였는데 하루 동안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온 엄마들은 교육내용이 무엇이든 참가 사실 자체만으로도 만족해했다.
상담심리를 전공한 교수님을 모시고 진행한 토론시간에 한 엄마가 발표를 하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별 얘기도 아니었다. '나는 문 닫고 조용히 화장실에서 볼 일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는 말에 모두 웃기까지 했다. 아이가 어찌나 엄마를 안 떨어지려 하는지 화장실 갈 때도 무릎에 앉히고 볼 일을 본다고 했다. 자고 있는 순간에도 눈을 뜨고 엄마가 안 보이면 울곤 해서 아예 화장실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면서 빨리 커서 유치원이라도 보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한다. 이 말을 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힘겨움이 한꺼번에 폭발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가슴 안에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이 솟구쳐 오른 것이다.
저녁에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엄마 꼼짝 말고 있어요. 볼 일 보고 나갈 테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방에서 뭔가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한쪽 다리에 힘이 없어 균형을 못 잡아서 혼자 움직이다가는 보행보조기를 안고 넘어질 위험이 있다. 이미 두 차례 넘어져 두 번이나 대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다. 수술 후 아직 다리 근육이 살아나지 않아 더 위험하다. 그런데 엄마는 뭐든지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혼자 사고를 친다. 의욕만큼 따라주지 않는 몸인데 아직 인정이 안 되나 보다.
할 수 없이 화장실을 서둘러 나와 방으로 가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보행기를 끌고 옷 행거에 붙어 서서 옷을 걸고 있다. 기우뚱하면 그냥 넘어지는데. 화가 나는 걸 꾹 눌러 참고 침대에 앉혔다. 밤에 잘 때도 꼭 2시간에 한 번은 화장실을 가신다. 잘 때 기저귀를 채워드리는데도 눈을 감고 비몽사몽간에 화장실 가신다고 일어난다. 나 또한 잠결에 엄마를 부축한다. 그러다 보니 방에서 잘 수가 없다. 아예 엄마 방문을 열어놓고 거실에서 잔다. 덜커덩 소리 들리면 자동반사적으로 일어나서 엄마에게 간다. 귀찮은 마음에 '그냥 기저귀에 누시지...' 하다가도 자기 대소변 스스로 가려서 기저귀 보따리 안 가지고 다니는 게 아이 키울 때 소원이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칭찬해줘 마땅한 일인데 나 귀찮다고 기저귀에 누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런 생각을 하며 얼른 일어나 엄마에게 간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떠나 어린이집 영아반부터 유치원, 초등학교 가는 것과 반대로 엄마는 노인교실, 노래교실을 지나 이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데이케어에 다니신다. 말하자면 초등학교에서 어린이집으로 내려온 셈이다. 영아반처럼 요양병원, 요양보호사 손을 거쳐 나에게로 온다. 그 어린 시절 내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엄마 손에 돌봄을 받듯이 나와 아이들의 손을 기다린다. 그렇게 삶의 곡선은 데칼코마니 무늬처럼 되돌아온다.
아직 노치원에 다니시는 동안에는 한 가지라도 더 스스로 하게 해 줘야겠다. 아침에 예쁘게 옷 갈아입고 나오며 '내일 토요일이다' 하신다. 주말에 놀러 온다고 약속한 나의 사촌 언니와 이웃 친구 분 때문에 내일이 기다려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