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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l 12. 2019

운동으로 몸 근육을, 글쓰기로 마음근육을

진급심사에서 탈락했다. 30년 직장생활 동안 더러는 일찍 승진하기도 하고 더러는 뒤쳐지기도 했다. 이제 퇴임을 앞두고 거의 마지막이 될 승진심사를 받았다. 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성공을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듯이 나도 어쩌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젊은 시절에는 가정사, 개인의 즐거움 모두 곁으로 밀어놓고 오직 회사일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랐다. 엄마도 돌보고 글도 쓰고 많은 배려를 받았다. 나의 가치 기준으로만 볼 때는 이 정도로 해서는 진급자가 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잠깐은 아쉬웠다. 그러나 서너시간후 나의 탈은 완전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아쉬운 순간이 있었지만 동시에 신나는 일도 있었다. 최초로 저자로서 강의를 한 날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 책의 저자로 요청된 강의는 아니지만 최초의 대중 글쓰기 강의였으니 내 가슴이 뛴 것은 당연하다. 강의후 전화번호도 따였고, 수강생들과 강사로서 사진도 찍었다. 첫 미팅에 나가 맘에 드는 남자에게 애프터를 받은 기분이다. 나의 이 두가지 운명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서 일어났으니 어쩌면 이것이 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한대로 계속 밀고 나가라는.


서울로 오는 고속버스에서 한강의 전경을 보았다. 평생 겪은 직장생활은 밝은 대낮의 한강과 같고, 글쓰고 책 읽는 삶은 한강의 야경을 보는 듯하다. 열심히 산 우리 골치 아픈 현실을 잘 이겨냈으니 인생 후반 아름다운 삶의 향기를 맡을 기회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다.

왕복 여섯시간 버스를 타고 지방을 다녀왔으니 몸도 지치고 중요한 사건들도 있던 날이니 집에 들어가 바로 쓰러져 자고 싶지만 운동을 갔다. 마음의 근육을 단단히 하니 몸도 이를 따를 준비를 했을 터이다. 그러나 내 몸의 근육은 그리 단단치 못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고강도 훈련을 하니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팔 올리고 발차기를 하는 내 모습이 살찐 오리가 뒤뚱거리는 형국이다. 전신거울은 가혹하다.이어서 와이드 스쿼트 45회차. "엉덩이 더 내려욧!"외치는 코치의 소리가 계속 들려왔으나 할 수가 없었다. 중간에 한 번 조금 더 내렸다가 그대로 주저앉을 뻔 했다. 하마터면 우스운 꼴을 당할 뻔 하고나니 엉덩이가 내려가다가 자동으로 멈추고 다시 올라온다. 이놈의 몸도 체면은 있어서 망신살 치는 건 싫은게다.

그렇게 어제의 정신과 육체의 근육강화 과정이 끝났다. 오랜 시간 책읽고 글쓰는 연습을 하며 정신의 근육을 가꾸었고 이제 몸의 근육까지 가꾼다면 내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 노후를 맞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다. 물론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비슷한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올지도 모른다. 그 때를 대비하며 부지런히 나를 가꾸고 내 그릇을 키워간다면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본다. 스펙터클한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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