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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May 27. 2019

목소리는 떨려도 기억은 짱짱

집을 나오는 데 엄마가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신다. 목소리가 작고 떨려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급해져서 잰 발걸음을 디디면서도 연신 손바닥을 펴서 손짓을 한다. 찬찬히 보니 뭔 넓적한 것을 말하려는 듯하다. 귀를 기울이니 "달라고 한 거, 달라고 한 거"라는 말로 들린다. 도저히 해독이 불가능하다. 일단 "응응"하며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는 성격이 급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거나 피해주는 걸 엄청 싫어하신다. 그래서 어디 갈 때도 미리 미리 서두르셔서 모임에라도 갈라치면 늘 1등으로 도착하신다. 데이케어에서 아침에 모시러 오는 시간이 다가오면 엄마는 눈에 띄게 서두르신다. 차가 도착하기 전에 전화를 주기 때문에 그 때 나가도 되는 데 굳이 나가서 기다린다. 아파트 입구에 앉을 곳도 없고 비도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데도 일단 나왔다. 벽 옆에 작은 턱이 있어 책을 놓고 앉으시게 했다.

자리에 앉아서도 연신 손바닥을 펴서 아까와 같은 말을 하신다. "아참 맞아! 센터에서 요양서류 챙겨달라 했지!" 부리나케 뛰어가서 서류를 가져왔다. 어제 원장님과 내가 나눈 얘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나보다. 서류를 가져 오니 또 꼼꼼하게 꺼내 보신다. 한참 기다리니 오늘 따라 원장님이 늦는다. 그래도 나와 기다린 덕에 시간을 5분이나 절약해서 회사 지각은 안했다. 꼼꼼하고 경우바른 엄마 덕에 내가 회사 안 쫓겨나고 여태 다녔을지 모른다.

"우리 엄마 이렇게 경우 바르고 기억력도 좋으니 100세까지도 짱짱하겄네. 내 칠칠 맞은 건망증과 게으름은 어쩐다요? 치매 안 걸리게 글 열심히 쓰고, 살빠지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쓰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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