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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Jul 26. 2019

PT 12회차. 매일 조금씩 야금야금 나가다

닭가슴살, 토마토, 당근, 고구마, 바나나, 오이,복숭아,블루베리,양상추, 피망,쫄볶기
지난 일주일동안 내가 집에서 먹은 음식들이다.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먹는 외식을 제외하면 참으로 아름다운 식사다.

그 효과는?

일단 탄수화물 중독은 완전 극복되었다. 밥 생각이 없다. 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밥은 꼭 반그릇만 먹는다. 돌솥밥 등 매혹적인 밥집은 안 간다. 식습관 하나가 바뀐 것이다. 또 하나 성과를 꼽자면, 라면을 안 먹는다는 것. 가끔 휴일에 집에서 출출하거나 퇴근후 배 고플 때 라면을 먹고 싶었다. 살찌는줄 뻔히 알지만 정신차리고보면 이미 라면냄비에는 국물만 남겨져 있기 일쑤다. 아니 국물까지 밥 말아 싹 비웠거나. 그런데 그제 퇴근해 들어가니 막내가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나도!"를 외쳤을텐데, 이제는 묵묵히 냉장고에서 닭가슴살과 야채를 꺼낸다. 두번째 식습관 혁명이다. 50년을 즐겨온 맵고 짜고 걸쭉한 찌게와 국물요리에서 졸업하고 있다.

지난 수요일까지 PT 12번을 했다. 물론 코치가 시키는데로 한다. 아직 집에서는 하지 않는다. 요가매트도 사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인다. 다만 실내사이클만 가지고 와서 타고 있다. PT하는 날은 끝나고 와서 11시까지 40분 사이클 탄다. 안하는 날은 사이클만 50분 탄다. 그래봤자 소모되는 칼로리는 밥 한공기도 덜 되지만 다리근육이 강화되는 것은 여실히 느껴진다. 무릎연골이 찢어져 운동시작전에는 약간 절룩거리며 걸었는데 별다른 치료없이 지금은 정상으로 걷고 있으니 운동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살빠지는 속도는 더디지만 걷기가 좋아지니 만족감이 높다.

다이어트나 운동을 시작하면 눈에 띄는 성과를 보기위해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무리하면 언젠가는 지치는 때가 온다. 그러면 확 나아갔다가 뒤로 미끄러질 염려가 있다. 예전에 나의 모습이다. 지금은 매일 조금씩 야금야금 나아가는 것을 실험하고 있다. 별로 많이 실천하지 않은 것 같은 부채의식이 있어서 내일은 조금 더 줄이고, 조금 더 움직여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만족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결핍감 때문에 조금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제도 PT에서 마지막 플랭크를 하며 코치가 1분을 하라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의무감에 20초라도 더 버텼다. 사이클도 40분 타라고 하면 10분이라도 더 탄다.

평생 이렇게 작은 목표와 실천을 챙기며 살아 본 적이 없다. 그저 화끈하게 하면 하고 안하면 아주 말아버리는 성향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니 좋을 때는 뭐든 성과가 확 올라갔다가 풍선에 바람 빠지듯 꼬꾸라진다. 한마디로 굵고 짧게 사는 인생이라할까? 그런데 가늘고 길게 포기하지 않고 사는 삶이 더 좋다는 걸 나이들면서 느끼고 있다. 폭식하지 않고 굶지도 않으며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기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내게 아직은 잘 맞지 않는 옷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옷에 딱 맞춘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좀 답답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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