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레 Jul 04. 2022

연봉 8천에 정년 보장이지만 그만 두겠습니다

첫 직장 이별일기

두렵지만 용감한척

첫 직장 이별일기





저 회사를 그만 다니려고요



지난 2주간 수 없이 많이 한 말이다. 이 이야기 다음 반응은 정말 제각각이었다. 내 인생을 놓고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들은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갈 데가 있나?



평소에 가깝게 지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부터 한다. 어디로 이직을 하는지가 가장 궁금한가보다. 내 대답은 '아니요'였다. 이직하지 않는데 퇴직을 한다? 이렇게 되면 일이 좀 복잡해진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끊어낼 도리가 없다. 



다니면서 이직준비를 해라



이걸 잘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한테는 무리였다. 이직 준비를 하면서 회사일을 하는게 어려웠다. 그렇게 되면 이직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고, 회사 일에도 더더욱 정이 안갈 것 같았다. 안그래도 인사발령으로 애착있는 업무를 못하게 되면서, 많이 좌절한 상태였는데 그와중에 이직준비라니. 그건 어찌되었건 월급을 나한테 주고 있는 회사한테도 못할 짓이다. 루팡이 되기로 작정한다면야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염치라는게 있어서 그건 안될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버티자



순한보직이 원칙인 회사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다 바뀐다. 내가 가거나, 그가 가거나. 실제로 지난 6년간 사람이 바뀌면서 훨씬 좋아진 경우가 많았다. 버티다보면 더 좋아지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근데 뭐든 이렇게 버티면 되는거라면, 회사 밖에서 힘든 환경에 처했을 때도 버티면 되는거 아닌가? 그정도 참을성이면 나가서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가 있던 지역/부서/업무는 또래 직원들 혹은 그 이상의 연령대 선배들조차 인정하는 우리회사에서 가장 기피하는 부서였다.)


물론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밖은 지옥이라고들 한다. 이건 내가 이제 곧 경험으로 알게되겠지…




2년 금방 지나간다



2년 금방간다지만 30대 초반에 2년은 너무 크게 다가왔다. 30대 초반은 결혼이라는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이벤트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가 아닌가. 30대 초반에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타지로 발령난다는건 남은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회사에서야 기혼자보다는 미혼자를 발령내는게 편했겠지만, 미혼자들은 이번 발령을 계기로 배우자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질 수도 있는거 아닌가? '적령기'라는 표현이 맘에 드는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땐 그 이유가 있는거니까. 어찌되었건 인생에 큰 이벤트가 많이 발생하는 시기라는 뜻 아닐까.



게다가 30대 초반은 아직 진로에 대한 여운이 남아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석사, 박사에 진학하는 걸 보면서 나도 뭔가 계속 발전해나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가능성과 꿈이 차단된 듯한 느낌. 그렇게 2년을 보내고 30대 중반의 나이로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다? 2년이 그렇게 짧은 시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내 인생이 이대로 고착화 되어버릴 것 같았다. 하고 싶은게 정말 많은 사람으로서 그걸 동시에 못하게 되는 환경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2년만에 서울로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었다. 내가 속한 곳은 대대로 희망해서 가고 싶어하는 직원이 극히 드문 곳이다. 지원자가 없는 경우 누군가를 억지로 끌어 내리지 않는한(혹은 회사에서 멀리 보내버리고 싶은 사람이 생기지 않는한) 다시 돌아가는게 쉽지 않아 보였다. (실제로 3년, 4년이 걸린 사례가 정말 많다)



연봉 8천만원에 정년보장
그리고 7년간의 네트워크


어찌보면 사람들의 격렬한 반응도 당연하다. 내가 포기하는 것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건 나 또한 알고 있었던 부분이다. 사람들이 격렬하게 붙잡아 주는게 정말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퇴사를 결심하기 전에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던 요인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과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것.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여기서 함께 나이들어가며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건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안타깝지만 퇴사를 결심한 이후에 다시 내 맘을 돌리기에는 '새로운 정보'가 아니었다. (미련일지도 모르겠지만 회사를 나가서도 기존에 소중한 인연들은 계속 이어나갈 작정이다. 이렇게 생각했기에 회사를 나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퇴사에 대한 생각을 굳힌건 회사의 인사제도와 조직운영 방향때문이었다.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나도 그 운 좋은 루트를 타고 있었더라면 아마 달콤함에 취해 퇴사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것 같다. 회사가 나쁜 곳은 아니었다. 정말 만족하고 행복해하면서 다녔었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고민이 더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퇴사를 결심한 계기에는 회사의 인사, 조직운영에 대한 불만이 컸다. 이 부분이 달라지지 않는한 계속 결심한대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붙잡는 지인들을 뒤로하고 계속 퇴사를 향해 가는게 쉬운일이 아니었다. 정말로.



내 것을 해보고 싶다



주도적으로 내 일을 해보고 싶다. 전문성을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회사에서도 주도적으로 자기일을 하면된다,', '회사에서도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 등의 반박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회사는 '전문가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곳이었다. 순환보직이 원칙인지라 전문가보다는 어디에 있어도 일을 잘하는 보편적 제네럴리스트가 필요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도 '회사에서도 주도적으로 자기일을 하고, 전문성을 갖출수 있겠지'란 기대감으로 한 때 노력하기도 했었다. 근데 그렇게 수없이 많은 시간 노력했던 것들이 '순환보직', '지방발령'이라는 원칙하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걸 봤다. 이게 인사원칙인 곳에서는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긴 어려울 것 같았다.



사직 사유



퇴사는 한가지 이유로 말할 수 없다. 적어도 난 그랬다. 내가 더 좋은 직장으로의 이직이 확실시 된 상황에서 나갔더라면 '이직'이라는 한가지 사유로 대답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수없이 많은 복합적인 고민들의 결과물이기에 그렇게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내생에 첫 직장, 첫 퇴사인데 왜 안그렇겠나. 보통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퇴사한다는 3년차도 아니고 어중간한 7년차에 퇴사라니. 사직서에 적을 사직 사유를 놓고 고민했다. 저 위에 쓴 내용을 다 적을 수도 없고, 그저 하나의 계기가 된 것을 적기로 했다. ‘원거리 발령'




잘한 선택일까?

퇴사는 옳지고 그르지도 않다



이번에 사람들이랑 수없이 많이 얘기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다. 지금의 '퇴사'라는 이벤트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것 자체는 옳고 그름에 어떠한 가치를 담고 있지 않다.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내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퇴사'를 떠올릴 때, 그때 퇴사하길 잘했다 혹은 그때 괜히 회사를 나왔다하고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즉, 그 판단은 지금부터 내가 어떻게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지금부터 만들어가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벌써 주도적인 삶은 시작됐다고  수도 있겠다. 하루하루 앉아만 있어도 월급이 나오는 안정적 삶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선택했으니,  선택이 '잘한' 선택이   있도록 스스로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고싶다. 잘해보자!

작가의 이전글 12살에 나는 뭐가 되고 싶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