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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l 03. 2022

12살에 나는 뭐가 되고 싶었을까?

32살에 돌아보는 나의 적성


기억전달자는 로리스 로리의 SF소설 The Giver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교육, 가족, 출산, 감정 등 삶에서 중요한 대부분의 것들이 일정한 규율에 따라 정해져 있는 가상의 세상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독특한 세상에서 모든 어린이들은 12살이 될 때 'Assignment'라는 걸 부여받게 되는데, 이는 남은 생에 걸쳐 수행하게 될 업무, 즉 직업을 말한다. 이 직업은 12살이 된 어린이에게 가장 잘 어울릴만한 것을 커뮤니티가 정해주는 식으로 결정된다. 





12살의 나는 어떤 직업을 받았을까?



만약 이 세상의 '직업결정자'가 12살의 나를 보고 직업을 줬더라면, 나는 어떤 일을 받았을까? 상상해보았다. 그 당시에 내가 가진 관심이나 장기, 개성에 따라 직업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예술 쪽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니 어린 시절 나는 미술을 좋아했고, 장래희망으로는 오래도록 '디자이너'를 골랐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가, 또 어느 때에는 패션 디자이너, 그 이후에는 시각디자이너 등을 꿈꿨다. 



어쩌다 보니 대학 전공은 '사회과학'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미술학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교과목을 공부하면서 '사회과학' 전공을 기반으로 한 직업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학부로 입학해서 다양한 전공의 개론 수업들을 들었다. 정치외교, 경제, 사회, 심리 그리고 타 학부 전공인 생물학, 인지과학 등까지 수강했다. 종합 대학에서의 장점을 마음껏 누렸기에, 학비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며 즐기면서 다녔다. 정치외교를 본 전공으로 했고, 경제학을 복수전공 그리고 사회학을 부전공으로 이수했다. 


대학에서 보낸 20대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전공이 재밌다 보니 배운 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정 '직업'을 고르지는 않았지만, '정책 업무를 민간에서 다루고 싶다'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방송국/신문사 기자가 되기를 희망하기도 했고, NGO에서 일하는 것도 생각해봤다. 그러다 지금 직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입사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회사지만 들어와서 보니 '내가 바라던 일'을 하는 곳이었다. 민간의 입장에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정부에 전달/건의하는 일을 한다. 이 회사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건 내가 대학시절 꿈꿨던 일이 맞다. 



학문과 현업의 차이



근데 뭐가 다를까?. 직장에서 나는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는 것 같단 생각에 빠진다. 돌아보니 나는 배우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스스로 발전하는 기분이 들 때 그게 정말 신이 났다. 그래서 문과생이 자연과학대 수업을 들었을 때도 재밌었고, 종교가 없는데도 종교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단순 반복 업무보다는 무언가 계속해서 배울 것이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더 나은 결과물 도출을 위해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걸 하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지금 나는 '기존의 틀'을 답습하는 데 더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내용보다는 양식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더 길다. 자간이나 장평이 콘텐츠보다 더 중요하다. 내가 작성한 문서의 큰 그림과 방향성을 잡아주는 상사는 없다. 온통 양식에 대한 집착뿐인데, 집착을 끝낸 후 문서가 더 예뻐졌는지는 의문이다. 저 정도 집착이라면 본인이 몇 달 전에 쓴 문서를 갖고 가도 어차피 트집 잡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무채색 옷이 마음 편하다



학교에서는 서로 생각이 다를 때 각자 자기주장을 펼치는 게 재밌었다. 의견이 다소 충돌하더라도 그게 토론의 묘미였고, 치열하게 소통하면서 설득하기도 하고 설득당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 그게 참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수직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상사와 주장이 다를 때 신나게 내 의견을 펼쳤다가는 모난돌이 되기 쉽다. 그리 길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여기서 너무 튀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 조금 덜 튀는 무채색 옷을 입는 게 마음 편하다. 



12살 때도, 22살에도 나는 좋아하는 일이 있었고, 하고 싶은 게 있었다. 서른두 살이 된 지금 나는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 걸까. 지금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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