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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Jun 29. 2022

인플레이션 시대 미술품 투자란

사실 투자는 언제 해도 고민이지

퇴근을 하고 할 일이 없는 날이면 그냥 여의도 IFC로 가곤 했다. 본부장과 대립이 심한 날에는 좋은 말로 ‘홧김 비용’이라고 부르는 쇼핑을 하러 갔었고, 마음과 머리가 모두 평온한 날에는 영풍문고에 들러서 책 표지를 구경하곤 했다. 서점이 도서관과 다른 점은 서점은 책을 ‘전시’한다고 했다. '여기 이런 게 있어요~' 하고 지나가는 눈길을 끌도록 설계되어있다. 어쩐지 서점만 가면 신나는 놀이터에 들린 것 마냥 이것저것 눈길이 가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이 책도 그렇게 지나다 보게 된 것이다. 명품 가방 대신 주식을 산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림’이라니 흥미로웠다. 신입사원 때 “난 명품 가방 대신 주식을 살 거야!” 다짐하고 샀던 크라우드펀딩 주식들이 사실상 휴지가 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명품 가방 대신”이라는 타이틀이 썩 반갑지는 않았다. 신입 시절 내 투자를 본 선배는 “차라리 가방을 사”라고 했다. 가방을 사면 가방이 남지만, 주식을 사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다. (비관적 농담이었다고 생각한다. 근데 그동안 가방값은 거의 두배가 되었으니, 통찰이었는지도)


반갑지 않은 타이틀이지만, 발상은 마음에 들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더욱 저 타이틀에 납득이 되었다. 사실 나는 명품 가방을 갖고 싶은 만큼 그림도 갖고 싶다. 투자 수단으로 볼 때 무엇이 더 우위에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저 내 취향이 가득 담긴 커다란 그림을 거실 한쪽에 걸어놓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춘기 시절 미대 진학을 꿈꿨던 사람으로서, 대학 시절 예술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교양수업을 수강했던 사람으로서, 전시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분위기와 작품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림을 갖고 싶다.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수 있나? '사실 그림은 투자로서의 가치도 훌륭해'. 이렇게 생각해야 내가 그림을 사는 마음이 좀 더 정당화된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시작하던 시기였다. 전 세계 모든 교류가 갑작스럽게 단절되던 시기, 2020년 3월. 뉴스를 찾아보니 각종 예술 활동이 모두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했다. 예술적 교류를 하려고 해도 사람이 오고 가야 하는데 원천적으로 그게 막혔으니, 당시는 예술 시장의 불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불황에 사서 호황에 팔라고 했던가. 당시 나는 그때가 그림을 구매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림 투자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껄무새가 그러하듯 역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름 리서치를   것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실행력이 부족한 거였다. 위험회피보다는 일종에 ‘게으름이랄까. 발품 팔아 움직여야 하는데 그저 방구석에서 손품 파는데 열심히였다. 옥션에 올라와있는 그림들을 살펴보고, 요즘 인기리에 거래되고 있는 그림들은 어떤 건지도 조사해봤다. 직접 산다고 했을   사면 좋을지 하나씩 골라보기도 했다. 오프라인 경매에도 참여해보면 좋을  같다고 상상했다.


내가 상상만 하고 잊어버리는 동안 누군가는 행동했겠지. 주식, 부동산과 같은 자산과 마찬가지로 그림 가격도 폭등했다. 어떤 작품이 1~2년 새 얼마가 올랐느니 하는 글들을 계속 보았다. 그림 공동구매 플랫폼인 ‘아트앤가이드’에서도 연일 그림을 비싸게 팔았다는 홍보 메일을 보내왔다. 어느새 주변에서는 ‘그림이 돈이 된다’는 측면에서 경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 지금은 늦었구나’라고 뒤늦은 탄식을 했다.


미술품을 직접 거래하기에 게을렀다면 관련 주식을 사는 건 어땠을까? 대표적으로 ‘서울옥션’이 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상승폭이 상당하다. 2021년 말 고점 대비로는 상당히 하락했지만, 그래도 몇 년 새 두배 넘게 상승했다.



서울옥션 주가 차트



위에서 잠시 언급한 아트앤가이드 같은 그림 공동구매 플랫폼을 통해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이것도 게으름뱅이도 손품 팔아 할 수 있는 투자다. 비교적 소액으로 유명 작품 거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 같다. 다만 그림을 내가 소유하지는 못하고 일종에 지분을 갖는 느낌이라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중개사(플랫폼)에 대한 신뢰성이 좀 더 확고해지면 그때 도전해볼 수 있을지도.



아트앤가이드 미술품 공동구매 홈페이지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자산 가격 하락. 이게 올 상반기의 대세 키워드였다. 반영되는 속도가 주식이 가장 빠르기 때문에 주식이 먼저 충격을 받은 거일 테다. 이 추세라면 다른 자산들도 크고 작은 조정을 받지 않을까. 투자자산으로서의 미술 작품이라면 유동성이 회수되는 시기에는 가격 상승이 조금 주춤하지 않을까? 지금 미술품을 구매(혹은 서울옥션 주식을 매입) 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스스로를 반성하는 글을 쓰면서도, 지금도 뭔가 '안될 거야', '안 할 거야'라는 마음을 깔고 있는 건가 싶어서 아쉽긴 하다.


그림은 돈과 투자의 범위를 넘어서 취향과 가치가 담겨있지 않은가. '나는 샤넬백 대신 그림을 산다' 책에서는 몇 십만 원 단위의 소액으로도 작품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도 지금 서울옥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다소 용기만 있으면 구매 가능한 작품들이 판매 중에 있다.



서울옥션 홈페이지



미술품 시장에서 직접 작품을 사보는 행동은 경험적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을 것 같다. 올 하반기에는 꼭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매 가능한 금액 선에서) 사서 가까운 곳에 걸어둬야지. (내 기준) 보기 좋은 이미지를 가까운 곳에 두는 심미적 즐거움이 클 거라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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