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영
이제 수영을 배운지 1년 정도 됐다. 흔히 수영을 몇년 정도 했는지에 따라 '수력 n년차' 로 표현하는데 나는 아직 수력 1년차인 이른바 '수린이'인 셈이다. 아직 중급과 상급 사이를 헤매는 수영 초보라 모든 영법이 턱 없이 엉성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발전하는 보람이 있어 한창 수영이 재밌는 중이다.
나는 20대 때 막연하게 수영을 배워보고 싶다고만 생각하다가, 30대가 돼서야 '수영 배우기'를 거창하게 신년 목표로 세우고 나서야 마침내 그해 여름 처음으로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걸어서 갈만큼 가까운 수영장이 집 근처에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온 나에게 운동하러 대중교통을 탄다는 것 자체가 큰 허들이었다. 게다가 수영장은 맨손으로 갈 수도 없고 샤워 물품과 수영 용품을 챙겨가야 한다. 작아보이지만 생활에서는 큰 허들로 인해 나는 운전면허를 딸 때까지 수영을 시작하지 못했다.
두 번째 이유는 강습 신청의 어려움이다. '수케팅' 이라는 비유가 있을 정도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퍼블릭 수영장의 강습 신청은 과장 좀 보태서 대학교 수업 수강신청이나 콘서트 티케팅 비슷하게 경쟁률이 치열하다. 나는 경기도 안양도시공사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수강신청을 하는데, 10시에 접수가 열리면 9시 사십분쯤부터 몇백명씩 홈페이지 접속 대기가 발생한다. 보통 운동을 하기로 크나큰 결심을 하고 그때 딱 결제해도 할까말까인데, 수영은 신청날짜까지 기다렸다가 시간 딱 맞춰 접속하고도 신청 못 할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 신청해야하는 입문반이 가장 인기가 많아 빠르게 마감되는 바람에 한번 실패하고 다음달까지 기다렸다가 신청을 했었다.
이런 역경을 거치고 나서 드디어 강습 가기 며칠 전, 쿠팡에서 수영복과 수경, 수모를 구매했다. 수영복은 그냥 쿠팡 검색 리스트에서 가장 상위에 있던 아쿠아티카 반신 수영복을 구매했다. 흡사 레슬러 같은 디자인에 왜 들어가있는지 모를 형광색 핑크 선이 두줄 세로로 들어가있는 수영복이었지만 사이즈나 디자인 같은 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수영 얼마나 다닐지도 모르는데, 수영장에 들어갈 수 있는 복장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약간 긴장되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안양수영장에 갔다. 주차를 하고 네이버 지도를 보고 수영장에 가서 회원카드를 발급받고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입장했다. 안은 일반 목욕탕처럼 라커가 있고 샤워실이 있었다. 샤워를 하고 수모를 쓰려는데 수모를 쓰는게 처음이라 요령을 몰라서 잘 써지지 않았다. 머리에 쓰려고 하면 미끌거리며 계속 튕겨나가서 창피하던 와중 보다 못했는지 옆사람이 수모에 물을 담아서 쓰면 잘써진다고 일러주었다. 알려준 방법대로 수모를 쓰고 입장하니 아주 넓은 레인이 펼쳐져있었다. 수영장 한쪽 벽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햇빛이 비쳐들어와 수면이 반짝거렸다. 라이프가드의 구호에 맞추어 스트레칭을 마치고 자신이 속한 레인을 찾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 나를 포함한 몇 사람들이 쭈뼛거리며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강사님이 큰 소리로 입문반을 불러모아 출석 체크를 하셨다. 처음에는 레인에 들어가서 물 속에서 걷는 것부터 시작했다. 물의 무게를 느끼며 걷는 것도, 윤슬이 반짝이는 수영장 타일색 물빛을 보는 것도 신기하고 재밌었다.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 중에는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다짜고짜 물에 전신을 담그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한바퀴 걸어보고, 점프도 뛰어보고, 물 안에 있는게 조금 적응되고 나서 수영장 레인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서 발차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물에 다리를 넣고 무릎을 지나치게 굽히지 않은 채로 수면 아래로 내렸다 위로 올리며 첨벙첨벙, 빠르게. 무릎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허벅지 힘을 써야한다고 강사님이 여러번 강조하셨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이 잘 오지 않아서 무릎을 굽히지 않고 통나무처럼 만들어서 첨벙대니 이번엔 조금 힘을 빼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는게 적절한 거지? 잘 모르겠지만 허벅지에 힘을 준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빠르게 첨벙댔더니 앉아서 발차기만 하는데도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와, 수영 역시 빡센데 좀 재밌다. 이것이 나의 첫 수영 강습 감상이었다.
처음 수영을 배우기 전에 막연한 걱정이 생길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수케팅에서부터, 샤워용품을 들고 왔다갔다 해야하는 번거로움, 래쉬가드나 리조트용 수영복이 아닌 강습용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어색함, 다른 사람들 앞에서 허우적댈까봐, 잘못해서 창피할까 지레 드는 초조함.
하지만 수영은 배워두면 정말 실용적이고도 재밌는 생활체육이다. 더 이상 물놀이 갔을 때 튜브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발이 닿지 않는 수심에서 유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을 세게 밀어낼 때마다 아주 조금씩이어도 체력은 늘어날 것이고, 천천히 수영할 때 물 위를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나의 몸을 느끼면서 기분좋은 효능감을 느낄 수도 있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가까운 수영장에 가서 먼저 등록하자. 일단 수영을 배우고, 수영을 재밌게 느끼기 시작하면 위의 허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남들보다 못해서 창피할까봐 드는 걱정은 접어둬도 된다. 나같은 몸치 운동치도 수영을 좋아하게 됐으니까. 일단 수모를 쓰고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에 들어가면 물 안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평소에 헬스 좀 한다고 무조건 더 수영을 잘한다고 볼 수도 없고,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나이 많은 사람보다 잘한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물 속에 들어가면 우리는 모두 공평하게 호흡하려고, 발차기 하려고, 나아가려고 바쁘다. 그러니 그저 뛰어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