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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Apr 27. 2021

<여자와 군대> ep.01

전체 엎드려!


예비교육생으로 괴산 학생군사학교에 입교하고 들은 버럭 첫마디.

녹색 보급 슬리퍼를 신고 복도에 엎드려
자꾸자꾸 밀리는 발을 끌어당기며,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걸 느끼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미쳤다고 남들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한다는 군대를 와가지고는..  쌀까.'


고등학교 때는 야자시간에 사물함 위로 올라가서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교복 치마가 담벼락에 설치된 철조망에 찢어지는 것도 감수해가며 월담을 하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내가,

규율로 움직이는 군대를  가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정말이지 진짜-너무-아주 힘들었다. 나랑 안 맞는 옷을 제대로 입었던 거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그 뒷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2012년, 하계훈련 중








국토대장정을 다녀와서 알게  학과 선배  명에게 밥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사준다는 말에 신이  가난한 대학생은 학교  식당으로 쫓아갔고, 거기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군대    가볼래??



우리 학교에는 학생군사교육단(ROTC)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해가 숙명여대 시범운영을 마친 후 전국에서 여자 후보생을 뽑는 첫 해였다.

학교 당 인원이 제한되어있는 남자 후보생과는 달리 여자 후보생은 각 도 별 인원이 정해져 있었고, 그것은 학교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일이 되었다. 여자 후보생이 많이 뽑힐수록 학교에서는 더 큰 지원을 약속했고, 각 학교의 학군단들은 여자 후보생들의 모집과 합격에 열을 올렸다.

 그 당시 학군단 후보생이었던 선배가 여자 후보생 모집을 위해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당시 후보생 당 ㅇ명씩 여자 후보생 할만한 후배를 데려오라는 지침을 받았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인생의 가장 큰 모토가 '재미'에 집중돼있던 나는 고민도 한 번 하지 않고 수락해버렸다.
살면서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 싶었고, 또래 여자 친구들이 가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에 아프리카 대륙 종단 여행을 꿈꾸고 있어서 휴학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뭐- 떨어질 수도 있는 거고, 합격해도 군대 다녀와서 가면 되는 거지! '

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ROTC에 지원하게 되었다.

이후 학군단에서는 지원한 여학생들을 데려와 매일 체력훈련과 공부를 시켰고, 그 결과 나는 시험장까지 가게 되었다.
시험장이 어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군 생활시설이 있었고 TV에서만 보던 관물대와 평상형 침상, 모포를 보고 신나서 호들갑 떨었던 기억은 난다.

그리고 나는 아주 시원-하게 떨어졌고, 미련 없이 휴학계를 내고는 아프리카를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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