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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Apr 28. 2021

<여자와 군대> ep.02

여기 학생군사교육단입니다.



아프리카에 뜰 생각으로 설레던 매일을 보내던 중,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기존에 합격해서 1차로 훈련을 받던 후보생 하나가 중도 포기했으니 당장 입교 준비를 하라는 것.

기껏 높은 경쟁률을 뛰어넘어 세 차례의 시험과 신원조회까지 통과한 그 친구가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당장 삼일 뒤에 입교를 하라는 말에 냉큼 그러겠다고 했다.

입교 준비가 너무 빠듯해서 보급품도 남의 것을 빌려다 군장을 채우고, 급하게 어설픈 남의 단복을 입고 총장님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다른 동기들은 한 달 가까이 미리 예행훈련을 하고 입교했건만, 나와 뒤늦게 추가 합격한 세명의 동기들은 미리 예행 훈련할 시간도 없어 간단한 제식과 사격연습만 짧게 하고는 입교를 했다.

괴산 학생군사학교에 도착한 직후, 교관님-동기들과 함께

그리고 나는, 나에게 자리를 넘겨준 그 친구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왔던 방식과는 너무도 다른 상식으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내가 입대한다고 말했을 때, 주변의 모-든 군필인 친구들은 나를 뜯어말렸다.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하러 가냐고.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모험’이라는 키워드에 꽂혀있었던 것 같다.

한비야의 여행기를 읽고 오지를 여행하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자기 자신을 한계로 몰아넣고 극복한다는 것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군대와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있었고,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 로망이 되어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막상 들어가 보니 환상과 내가 느끼는 현실감은 사뭇 달랐다.


샤워 시간은 옷을 벗고 입는 시간을 포함해 5분이 채 되지 않았고, 잠을 자는 시간은 내 불침번과 다른 동기들이 불침번을 위해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해체하는 소리 덕분에 매일 모자랐다.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부식(간식)은 딱 한 번, 아주 심플하게 제공됐고 밥 먹는 시간 또한 모자라 반 정도는 버리기 일쑤였다.


계속해서 어딘가로 불려 가거나 지시사항을 빠듯한 시간 내에 이행하기 위해 눈 뜨고 있는 시간 동안  1분 1초가 통제되었고, “집합 1분 전!!”, 혹은 “종료 1분 전”이라는 말을 복창하기 바빴다.


심지어는, 화장실을 원하는 때에 갈 수 없어 훈련생 대부분이 변비를 앓았고, 저녁 점호시간에는 아예 변비 앓는 인원을 따로 조사해 '아락실'이라는 변비약을 나눠주곤 했다.


내 의지대로 먹고, 자고, 싸고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삶의 질을 이렇게나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크게 깨달았고, 그만큼 하루하루 사는 게 버거웠다.

바로 옆 침대에 불침번을 매번 같이 서던 동기가 있었는데, 그 친구도 나도 함께 들어온 동기들 중에서는 가장 힘들어하는 편에 속했다.

우리 그냥 군장 쌀까? 나갈래???

매일 새벽마다 이런 말들을 주고받았고, 진심으로 고민했더랬다.

그럼에도 나가지 못했던 이유는, 모두가 함께 연대하여 힘을 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구력이 다른 동기들에 비해 뒤쳐져있던 나는 매일의 교장 이동(생활관에서 훈련장으로의 이동)만 해도 너무나 버겁게 느껴졌다.


소총, 방독면, 수통, 대검, 철모까지 쓰는 단독군장을 착용하고, 20kg 정도의 군장을 둘러멘 상태로 짧게는 편도 5km, 길게는 15km 정도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는 길을 매일 이동했는데, 뒤쳐질 때마다 동기들은 힘내라고 같이 소리쳐주고, 밀어주기도 하면서 도와주었다.


 또 훈련장에서 추위와 싸우며 차례를 기다릴 때는 동상에 걸리지 않기 위해 어깨동무를 하고 계속해서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함께 군가를 소리 지르듯 부르며 힘을 내 이동을 했다.


 연대한다는 기분이 이끌어주는 힘은 굉장히 강력했다. 함께 고생하는 동기들이 서로를 북돋워주고 있는데, 누군가 이탈을 하게 되면 같이 있던 친구들이 얼마나 허탈할까 싶어 훈련기간 내내 고민만 하다가 결국 무사히 수료를 하게 됐다.

어찌 됐든, 첫 훈련을 수료하고 나왔을 때 우리를 지도해주시던 교관님과 나를 이곳으로 밀어 넣었던 학과 선배, 군대를 가지 못해 약간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우리 아빠, 그리고 같은 교회에 다니던 두 기수 학군 선배였던 오빠 등등 여러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학군단의 정식 일원이 되어 입단식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와 관련지을 수 없는 곳이라서 더욱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졌고,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으쓱한 기분으로 2년의 학교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그게 나중에는 약간의 독이 되었던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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