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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Apr 30. 2021

<여자와 군대> ep.03


학군후보생 은 방학 때마다 총 4번의 훈련을 들어간다.

그래서 가장 추울 때, 더울 때에 기초 군사훈련을 포함한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훈련을 받게 된다.

때문에 훈련 시 가장 챙겨야 할 것은 항상 동상과 열사병이었다.


​하계훈련을 받기 위해 논산의 육군훈련소에 입소를 했던 때의 일이다.


2시간 정도를 걸었으니 아마 10km쯤 되었던 것 같다. 8월 한낮의 땡볕 아래, 열이 안에서 맴도는 철모(방탄모)를 쓰고 완전군장(대략 20~25kg)을 한 상태로 걷는 중에 여자 동기 한 명이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아마 열로 인한 것이었던 듯했다. 나 역시도 영혼은 이미 저 하늘나라 어딘가를 떠돌며 발만 습관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 같았으니.. 자세한 뒤처리는 듣지 못했으나, 들고 있던 군장과 총기를 빈 몸이었던 조교가 대신 메고 갔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뜨거웠던 하계훈련 중.




​​​​

그 날 훈련이 끝나고 총기와 전투화 손질, 빨래까지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여자 후보생이 자고 있던 생활관은 발칵 뒤집혔다.

담당 훈육관님이 우리를 모두 소집한 것이었다.

우리는 미끄러운 대리석 복도에서 모두 엎드려뻗쳐서 자꾸 미끄러지는 슬리퍼를 끌어당기며 일장연설을 들었다.


​너네가 여대생이야? 여자 대접받으려고 군대 왔어?!!​​


낮에 쓰러진 여자 동기의 일로, 한밤중에 여자 후보생 전체가 얼차려를 받게 된 거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어디 감히 군장을 남자 조교가 들게 하는 거냐, 훈련을 체력으로 받는 게 아니라 정신력으로 받는 거다. 어떻게 쓰러질 수가 있냐 등등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발언들이었다. 여자라서 쓰러진 게 아니었다. 그즈음의 날씨는 완전군장으로 밖에서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쓰러질 수 있었던 날씨였다.

실제로 이전에 남자 후보생 중에서도 쓰러진 일이 있었고, 못 버티는 동기가 있을 때는 서로 조금씩 도와가며 해왔는데. 여자 후보생이 쓰러졌다는 이유로 얼차려를 받는 게 너무도 부당하게 느껴졌다.

또 어느 날은 각개전투 훈련 중 어깨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약진을 하다가 바위 뒤에 엄폐하기 위해 한 손으로 땅을 받치면서 그대로 엎어지는 자세를 취했는데 어깨에 충격이 심하게 간 것이었다. 그 날 훈련은 그대로 받았지만 저녁에 병원에 다녀오면서 팔걸이를 한 채로 생활관으로 복귀를 하게 됐다. 그리고 복귀 신고를 하러 훈육관님의 방에 들어갔을 때 훈육관님은 화가 나 있었다.


​팔 뭐야? 그래서 군장 안 메겠다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말이다. 당시 훈육관님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오기가 생겨서 팔걸이를 빼버리고는 “아닙니다. 멥니다.”라고 말을 해버렸다. 그리고 완전군장을 한 상태로 행군까지 마치고는 1년 간 어깨를 치료하느라 제대로 쓰지 못해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왜 그리 독하게 굴까 싶어 정말 매일매일이 원망스러웠는데,

남초 집단이었던 군대에서 여성이 살아남기가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본격적인 군생활을 하며 알게 됐다.

거기서 할 말이라도 당당하게 하려면,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군인 으로서의 기본 바탕을 충실히 쌓고,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임신 중 과로로 쓰러져 고인이 되신 모 대위님(다른 훈육관님의 동기이셨다), 한 간부의 성추행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어 분통 터졌다는 군무원 분과 제대로 대응했음에도 결국 다른 부대로 밀려난 동기, 그리고 술자리 성추행에도 부대가 나로 인해 시끄러워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입을 닫았던 나, 지독한 입덧으로 오전 내내 구토를 하러 화장실을 수십 번 오가면서도 업무를 끝내기 위해 평균 22시에 퇴근했던 나에게 임신 유세하느라 사무실을 자꾸 비운다고 비난하던 남자 중사(참고로 얘는 4시 되면 공차고 칼퇴근하던 애라 정말 어이가 없었음) 등등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이게 비단 개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았고 저렴한 성인지 수준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훈육관님이 위관 시절을 보냈던 그때 당시에는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라고,

마음을 단단히 하는 것과 기본능력을 탄탄히 쌓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몇 년 후에나 들었다.



​​​

정말 잘하고 싶으셨던 욕심이 엿보였었고, 군생활을 하다 보니 훈육관님의 언행들을 차츰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후보생들이 수양록(훈련일기)에 적은 인신공격들로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으셨던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남아있습니다.

정ㅇㅇ훈육관님, 열과 성을 다해 후배 여군 들을 키우려던 의지에 늦게나마 감사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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