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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May 05. 2021

<여자와 군대> ep.p4

오늘은 기초 군사훈련에서 취급했던 여러 과목들에 대해서 말해볼까 한다.



1. 수류탄 


수류탄 교장이 논산 훈련소의 여러 교장들 중에 제일 멀었던 곳으로 기억한다. 땡볕에 몇 시간씩 걷고 나서야 훈련을 할 수 있었는데, 수류탄 교장을 다녀오고나서부터는 매일 발에 물집이 여럿 잡히고, 밤마다 터뜨려 물을 빼내느라 고생 한 기억이 있다.

수류탄 교장에 도착하면 소매를 헐렁하게 내리고, 상의를 바지 밖으로 꺼내 입게 한다(당시 개구리 전투복은 상의를 바지 안에 넣어 벨트를 착용하는 복장이었음).


 또한 지면이 흔들리는 엄청난 소리와 진동, 교관들의 긴장한 모습으로 후보생들은 긴장을 잔뜩 하게 된다. 복장 상태를 고쳐 입는 이유에 대해 나중에 듣게 되었는데 실로 충격적이었다.

수류탄을 받은 후에 옷 속으로 집어넣어 폭발시켜 자살한 사례가 있었던지라, 혹여라도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비책이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수류탄을 놓쳤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진지 안에는 수류탄을 발로 차 넣을 수 있는 구멍(수류탄처 치공)이 있었고,

1 : 1로 붙은 조교들 역시 우리들을 긴장시키지 않기 위해 세상 친절했다.

물 안에 던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땅이 흔들리고 천둥 치는 듯한 소리가 났고, 누구 하나 실수라도 하는 날엔 다 죽을 수도 있는 걸 알았던 터라서(수류탄은 손에서 떠나면 3-5초 안에 터지게 된다) 정말 무서웠던 것 같다.

오버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 한 이병이 훈련 중에 긴장한 나머지 수류탄을 던지는 중에 놓쳐 병사들 한가운데에 수류탄이 놓였고, 중대장이었던 강재구 소령은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대량 살상을 막고 즉사했던 것. 그래서 그분을 기념하는 동상이 있고, 정신교육 때는 그의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여하튼, 실제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나 역시 긴장하고 있었고, 손에 땀이 흘렀다. 그 때문에 수류탄이 미끄러질까 봐 덜덜 떨었지만, 다행히 목표지점으로 무사히 던질 수 있었다. 친한 동기 한 명은 긴장해서 물속에 던지지 못하고 진지 앞쪽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한바탕 욕을 먹고 소동이 있기도 했다.



2. 화생방

​화생방 훈련하면 많은 사람들이 눈물 콧물 쏟아내는 장면들을 흔히 생각하는데 고통을 겪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생화학과 방사능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몸을 잘 방호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훈련이다.

생화학무기로 가정하고 사용하는 cs가스에 노출되었을 때, 빠른 시간 내에 숨을 참고 방독면을 쓸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생화학무기의 종류를 공부하고 노출되었을 때 방독면과 방호복, 방호 신발과 장갑까지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입으면 통과, 아니면 탈락인 시험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우리가 흔히 아는 cs가스가 꽉 차있는 어두운 밀실에 들어가 방독면을 벗고, 숨을 참으며 다시 쓰는 화생방 훈련을 하게 된다.


이 가스 입자는 피부에 가시처럼 붙어서 손으로 만지거나 비비면 고통을 느끼게 되어 모두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도 닦을 수가 없는 거다.

이 훈련 중에 마지막 숨을 못 참아 들이 마신 덕분에 나 역시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상태로 나와서 의도치 않게 줄 서있는 다른 동기들에게 겁을 주게 됐던 기억이 난다.


3. 각개전투

아마, 군대 다녀온 사람이면 다 아는 리듬일 것이다.


우리는 끝났다, 각! 개! 전! 투!
너희는 죽었다, 각! 개! 전! 투!

한 주의 훈련을 마치고 주말 종교행사에 가면, 각개전투가 끝난 대대는 대놓고 떼창으로 노래를 부른다. 너네는 죽었다고.

노래대로 악명 높은 훈련이었다.

각개, 즉 개개인이 싸워야 하는 전투여서 각개전투라고 했는데, 산 정상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땡볕에 산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엎어지고 또 일어나 뛰고를 해야 하는 지라 체력소모가 상당히 컸다.

하루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며칠의 훈련 끝에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하는 터라 아주 진이 쏙 빠졌던 것 같다. 게다가 이 훈련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지라 나에게는 징글징글한 시간들이었다.


3. 독도법 

지도를 읽는다 하여 독도법이라고 부르는 이 훈련은 전자통신장비 없이, 지도만으로 산에서 길을 찾는 훈련이다.

산 여기저기에 흩어놓은 깃발의 좌표를 지도에 찍어주고, 시간 내에 3개의 깃발을 3명의 팀이 찾는 훈련이었다.

지도와 실물의 방향을 맞추고 걸음수를 세어 거리를 재는데, 인터넷 지도를 보고도 길을 잘 못 찾는 방향치인 나에게는 아주 쥐약 같은 과목이었다.

이론은 빠삭하게 잘해서 정말 자신 있었는데, 막상 산에 던져지면 당최 감을 잘 못 잡는지라 아주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일반인이 등산하는 산이 아니라 길이 잘 없는 산이어서 대검으로 풀숲을 헤치고 다녀야 했다. 뱀을 봤다는 친구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산에다 볼일 보고 나뭇잎으로 처리했다던 놈도 봤다.

특히나 임관 평가 (임관하기 위해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야 했다) 과목이었기에 뱀을 봐도, 생리현상이 찾아와도 대충 해결하고 깃발을 찾아 나섰어야 했다. 약한 과목이긴 했지만, 덕분에 서바이벌 게임하는 느낌으로 재밌게 했던 과목이었다.


4. 행군 

매 훈련의 마지막에는 항상 행군이 있었다.





처음에는 짧은 거리로 시작해서 점점 늘려가는 식으로. 마지막 훈련이 몇 km였는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17시간이었던 건 기억난다.

저녁에 출발해서 해가 중천일 때 도착했으니 아주 개고생의 종착점이었다.

게다가 나는 행군과 생리 예정일이 겹쳐서 피임약을 먹고 일정을 조절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행군 전날 사열과 여러 가지 바쁜 일정으로 약 시간을 놓쳤고 결국 행군일에 맞춰서 생리를 맞이하게 되었다.

생리통은 약을 먹으면 됐지만, 더 큰 문제는 패드였다. 보통 3-5시간 간격으로 바꿔줘야 하는데, 행군 중에 도저히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내 자리는 대열의 맨 앞 쪽이었고, 이동화장실은 대열의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0분 걷고 5분 쉬고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5분 내에 대열 끝에 있는 화장실까지 뛰어가서 화장실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체력은 최대한 비축해야 했고 무엇보다 이미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 내 발바닥으로는 뛸 수도 없었거니와 군장을 어깨에서 풀면 통증 때문에 다시 메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이것 때문에 쉴 때도 멘 채로 그대로 누워있었음).


쉬는 시간 중에.




결국 그냥 17시간을 내리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미 불어 터진 패드에 쓸려 까지고 있는 짓무른 살, 물집으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가시로 찌르는 통증, 허리에 찬 탄띠에 쓸린 골반 피부, 군장으로 내리누르는 압박감으로 피멍 든 어깨, 5km마다 줄줄 흐르는 눈물, 땀으로 젖어 무거운 전투복. 뭐 그런 것들을 끌어안고 걸으면서 논두렁에 떨어질까, 정신을 놓고 기절해버릴까 그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대열에는 같은 학군단 동기들이 있었고, 안 그래도 체력이 달리는 걸 아는 동기들은 나를 챙겨주었다.

정신이 혼미해서 비틀거릴 때는 방탄모를 벗고 머리의 열을 식히면 좀 낫다며 들어주었고, 오르막길에는 힘내라며 손을 잡고 끌어주었다.

멘탈이 어딘가에 굴러 떨어져 눈물 떨구며 걷고 있으면 웃긴 이야기를 해주었고, 군장 대신 들어줄까 하는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위로를 던져주기도 했다.


그 이전 행군에서는 처음 보는 옆 동기와 쉬는 시간에 길바닥에 누워 별을 보며 핫브레이크를 나눠먹었기도 했는데,
함께 고생하면서 훈련을 받은 동기들에게는 전우애가 남고 그 추억도 여간해서 잊히지 않을 만큼 진하게 남는 것 같다.


아직도 습한 공기와 온도, 풀냄새, 소똥 냄새 같은 것들이 느껴질 때면 그때의 고생한 날들이 떠오르는 걸 보니.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추억이고 내 나름의 한계를 넘은 자부심들이라, 잊지 않기를 바라면서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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