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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May 14. 2021

<여자와 군대> ep.06

 전역하기 전까지 근무했던 부대에서는 이전 부대에 비해 더 비중 있는 실무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참모였고, 인사-재정-동원훈련의 업무를 모두 담당했던지라(이전 부대에서는 인사담당관, 재정담당관, 동원 담당관이 각각 있었다.) 처음에 굉장히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 과의 과장님 역시 업무가 과다하게 몰려있어서 7시 이전에 퇴근하는 날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그렇게 하루하루가 버티기 힘들었던 우리에게 정말 의지가 되는 선배가 한 명 계셨었다.

다른 부서의 P과장님이셨는데 우리 부대에서 제일 오래 근무한 장교였고 오래 근무한 만큼 할 수 있는 보직은 거의 다 해보신 분이었다. 우리 과 과장 자리를 지내셨으며 중대장이 공석이라 겸직까지 하고 계신, 한마디로 부대 일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워커홀릭이셨다.

게다가 그 바쁜 와중에 자기 관리는 어찌나 철저했던지 인사기록에 남아있는 스펙 또한 어마어마했다.

아이를 낳기 이틀 전에는 단독군장 차림으로 사단장님께 훈련 보고까지 다녀오셨고, 출산휴가가 끝나자마자 복귀하여 본인 사무실에서 유축과 야근을 동시에 하신 분이었다.  하여튼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던 분이었다.

어느 날은 사단의 인사담당자와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이 담당자는 나보다 한참 위 선배이면서 동시에 대답을 잘 안 하고 화 잘 내기로 유명한, 한마디로 재수 없는 타입이었다.


나 - "ㅇㅇ대대 ㅇㅇ장교 ㅇㅇㅇ중위입니다. 이러이러한 공문이 내려왔는데, 저희 부대에서는 인원이 부족해서 변경해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사장교- "...."

나- "인사장교님...?"

인사장교- "야 바빠 끊어."

-뚝-


 확인해서 당장 있을 회의 때 보고해야 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렇게 무안을 당하고 끊으니 다시 전화하기가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잠깐 커피를 마시러 우리 과에 들리신 p과장님이 낌새를 눈치채고 나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전후 사정을 들으시고 그 자리에서 내 전화를 들어 바로 사단 인사장교에게 전화를 거셨다.

"어 난데~ 잘 지내냐?? 야야 우리 대대장님이 당장 확인하라시던데 부탁 좀 하자~~ 그래그래."


게다가 전화를 끊으시고는 한 술 더 떠서 내게 이런 말 까지.


"ㅇㅇ야, 잘 안 해주려고 하면 나한테 전화해~ 사단 인사장교보다 내가 선배야^^"


또 어느 날은, 만삭이 다 되어가는 몸으로 전투화를 신고 단독군장 상태로 훈련에 참여 중이었다. 전투화는 딱딱해서 발이 붓는 임산부에게 는 고역이었고, 또 배 부른 몸으로 절그럭거리는 단독군장을 주렁주렁 몸에 매달고 있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규정에는 분명 임신 여군이 전투화 대신 검은 운동화를 착용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지만 불과 일 년 전에  p과장님도 임신 중에 똑같이 하고 다니셨고, 심지어 대대장님도 출산 직후에 단독군장으로 훈련 뛰느라 총을 메고 다니던 한쪽 어깨가 아직도 아프다는 얘기를 들은지라, 배려를 바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신 p과장님은 나를 따로 불러내 한마디 하셨다.

"ㅇㅇ야, 너까지 그렇게 할 필요 없어. 규정에 있잖아. 단독군장 빼고 내일부터 운동화 신어. 대대장님께는 내가 커버 쳐줄게."

강한 사람이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하기가 쉽지 않은 걸 알기에 다른 부서 과장님이었지만 정말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전역하고 나서 어느 날인가부터 자꾸 함께 일했던 우리 과장님한테 내 건강과 안부를 묻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게 됐다.
p과장님이 세상을 뜨셨다는 걸.

그리고 우리 과장님은 다른 이들도 어디 아픈 건 아닐까, 건강한가 싶어 연락을 한 거였고.

30대 젊은 분이셨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어린 나이였는데. 또 그렇게나 건강하시고 우수하시던 분이 이렇게 갑자기 가셨다.

암이었다고 한다.
암 수술을 받고 두 달만에 재발해서 돌아가셨단다.

순간 만사가 허탈해졌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지만 그게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 존경했던 사람이라면 무게감이 너무나도 크다.

군에 몸 담으면서 화려한 이력도 쌓고, 파병도 다녀오면서 누구나 반할 만한 커리어를 쌓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내 몸의 장애와 p과장님의 죽음을 겪으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만드는 명예와 권력에 차츰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내려놓고 오늘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됐다.


어디선가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고있을 그 때의 동료들이 오늘따라 참 보고싶다.






과장님, 좋은 곳에 가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항상 존경했고, 과장님과 같은 멋진 분과 함께 일해서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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