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눈』을 통해 바라본 파업 이야기
말을 해야 할지 침묵해야 할지, 선택의 순간은 종종 우리를 찾아온다. 이 순간을 항상 알아차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때로는 선택의 순간인지 알아채기 어려울 때도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꺼내보면, 입대하고 나서 처음 자대에 배치 받았을 때 생활관에서는 빨래를 함께 하는 문화가 있었다. 군대에 가면 안에서의 규칙이 있을 것이라 미리 마음을 먹고 입대 했었기 때문에 이상한 부분을 느끼지 못했었지만, 주말에 형과 통화를 하면서 본인이 군대에 있을 때도(군번이 약 7년 빠르다) 단체 빨래는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래된 부조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았다고는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부대 안에서의 ‘규칙’이었고 나는 규칙을 따라야 하는 이등병이었으니까.
훗날 이러한 전통이 마음의 편지를 통해 사라질 때, 침묵하며 잘못된 규칙을 유지한 우리도 부조리에 동참한 것이라는 말이 조금은 뾰족하게 느껴졌었다.
천선란의 <이끼숲> 속 단편 『바다눈』에서 주인공 마르코는 열다섯 살의 경비일을 하는 노동자다. 어느 날 마르코의 선배 커커스는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에 참여한다.
파업에 참여하는 직원들이 생겨도, 회사의 일은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일은 마르코를 포함한 남아 있는 이들의 몫이 된다. 이러한 상황은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 계약한 월급보다 많은 금액을 가져다주지만, 그들이 초과 근무한 시간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금액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모두의 권리를 찾기 위해 파업하는 노조의 편에 서야 할까?
아니면 파업으로 인해 과중한 업무를 떠안게 되었다고 노조를 원망해야 할까?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나도 마르코와 똑같이 처신하지 않을까 싶다.
적극적으로 노조의 편에 서서 파업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위해 애쓰는 노조를 원망하지도 않는 소극적인 선택, 침묵.
하지만 침묵함으로써 누군가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닐까?
침묵으로 잘못된 부조리를 유지했던 것처럼, 마르코가 받았던 계약 월급의 초과한 금액은 사 측으로부터 받은 침묵의 대가가 아닐까?
침묵했다고 해서 누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 건 아니다.
커커스는 마르코의 침묵을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침묵할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이 침묵은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