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백

다시, 용사가 되는 일에 대하여

순수함을 잃어가는 요즘

by 유앨런

1. 아침마다 게임 음악을 들었습니다.
‘포켓몬스터’의 테마, ‘드래곤퀘스트’의 BGM, 그리고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의 배경음악처럼요. 그런 음악들을 듣는 일은 단순히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마음을 정비하는 주문 같았고, 세상과 맞설 무기를 꺼내는 의식과 같았죠. 저는 지우였고, 링크였고, 이름 모를 세계를 구하러 가는 용사였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이야말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뜨거운 에너지원이었죠. 출근길조차 모험처럼 느껴졌던 가슴 벅차는 시간들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2. 하지만 요즘 그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음악들을 여전히 들어도 예전처럼 가슴이 벅차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냥 “아, 이 노래 참 좋았지”, “그때는 그랬었지” 정도의 감상만 남습니다. 그나마도 잠시 머물렀다가 금세 사라지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머리는 분명 기억하고 있는데 가슴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예전에는 음악 하나로도 하루가 바뀌곤 했는데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소리일 뿐이네요. 이 변화가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3. 어릴 적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새로 나온 영화에도 큰 감흥이 없고, 좋아하던 노래를 들어도 무표정한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회색빛으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건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제가 그들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습니다. 누군가 게임 이야기를 꺼내도 마음은 반가운데 반응은 담담하고 조용합니다. 속으론 설레지만 겉으로는 티 나지 않게 넘기게 되고 예전처럼 반짝이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제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4. 순수함은 언제부터 이렇게 희미해진 걸까요.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 있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었다는 핑계로, 그것들을 하나씩 포기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작은 설렘, 하루를 바꾸는 음악 한 곡, 아무 이유 없는 낙관, 그리고 모험심 같은 것들이 말이죠. 예전에는 그런 것들이 저를 지탱해주는 기둥이었는데, 지금은 제가 그 기둥을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허전함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데, 그걸 다시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5. 그래서 요즘은 그때의 마음을 다시 떠올리려 애쓰고 있습니다.
설레지 않더라도 포켓몬 BGM을 틉니다. 가슴이 뛰지 않더라도 드래곤퀘스트의 전투 테마를 들으며 출근 준비를 합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젤다의 타이틀 화면을 켜두고 가만히 창밖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런다고 당장 무언가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어쩌면 이 반복이 언젠가는 저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감정이 따라오지 않더라도 의지가 먼저 앞서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요즘 조금씩 체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성숙’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네요.


6. 언젠가는 다시, 그때처럼 마음이 뛰는 날이 올 거라 믿고 있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단순한 음악 한 곡으로도 하루가 뒤집히던 그런 시절처럼요.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그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게 저를 지켜줬던 힘이었고, 앞으로도 저를 일으켜줄 유일한 힘이 될 테니까요.


오늘은 아직 그날이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조용히 다시 용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3.PNG 나의 성장기를 함께 해온 용사들이 그때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저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용기를 얻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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