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엔딩을 앞두고 오래 머무는 이유

게임 속에 남겨질 나의 동료들

by 유앨런

1. 언제나 RPG가 가장 좋았습니다.
탐험과 전투, 레벨업도 좋지만 결국엔 동료들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싸우고 대화하고, 웃고 울던 동료들 말이죠. 최소 30시간을 넘게 함께하는 그들은 게임 속 등장인물이 아니라 함께 모험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느껴졌습니다. ‘드래곤퀘스트 11’의 카뮈와 베로니카 같은 용사일행, ‘젤다의 전설’ 속 미파, 리발을 포함한 영결들, ‘용과 같이’ 시리즈의 이치반, 마지마, 그리고 키류. 이들과 게임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현실 속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보다도 때로는 더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2. 그런 이유로 게임의 엔딩을 서두르지 못합니다.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캐릭터들이 서로를 격려하거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지는데요. 이제 곧 이들과의 시간이 끝난다는 걸 알기에, 저는 일부러 던전을 빙빙 돌거나, 밀렸던 사이드퀘스트를 깨고, 쓸데없이 레벨을 올리며 시간을 늘려 봅니다. 게임을 클리어하는 순간 이들과의 여정도 끝나버릴까 조금은 두렵거든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동료들을 두고 떠나야하는 작별처럼 느껴집니다.


3. 저에게 단순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삶의 구석구석에서 문득 떠오르는 말과 표정, 행동들이 저를 붙잡아줄 때가 많습니다. 야쿠자 조직 전체가 자신에게 등을 돌려도 신념을 잃지 않는 키류 카즈마처럼. 절망의 늪에서 모두가 헤어나오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묵묵히 자기 자신을 던지는 드래곤퀘스트의 용사들. 젤다를 구하기 위해 끝없이 싸우는 링크의 침묵. 이들의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현실 인물들보다 더 울림있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곤 했습니다.

3.PNG 용과같이8에서 엔딩 후 즐긴 콘텐츠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어렸을 때 추억을 생각할 때 처럼 말이죠.

4. 이들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았습니다.
혼자서 게임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플레이 중일 때는 누군가 든든히 옆을 지켜주는 기분이었고, 때로는 조언을 들은 듯 마음이 정리되기도 했습니다. 화면 속에서나 존재하는 캐릭터들인데도 이상하게 따뜻했고, 인간적이었습니다.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서도 여운이 남았고, 이는 제 삶의 자세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말이 없는 링크에게도, 과묵한 키류에게도 저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 막이 내려도 그들은 언제나 절 기다립니다.
게임이 끝나더라도 2회차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언제든 게임기를 켜서 그들이 있는 세계로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예전처럼 말 걸어주고, 도와주고, 웃어줍니다. 그런 반복이 저에게는 위로였습니다. 달라지는 건 없지만 저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등을 맡대고 역경과 헤쳐나가는 대체불가능한 관계는 변함없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게 어쩌면 제가 RPG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 친구이자, 선생님이자, 동료입니다.
힘들 땐 옆에 있어줬고, 흔들릴 땐 방향을 제시해줬습니다. 단순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자라온 시간만큼 단단해졌기에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졸업, 이직 등 이유로 현실에서 누군가와 멀어질 때보다도 게임 속에서 동료와 이별할 때 더 슬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죠. 오늘도 저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합니다. 익숙한 이름들을 다시 불러보고, 아직 만나지 못한 동료들을 찾아 나서봅니다. 그들은 언제나 제 마음속에 살있고 언제든 함께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2.jpg 젤다 야숨에서 이벤트 중간에 나오는 촬영장면. 많은 게이머들이 뽑는 최고의 단체사진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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