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퀘스트5 – '가족'이라는 이름의 인생 이야기

(리뷰/후기) JRPG의 모범, 그리고 인생의 축소판

by 유앨런


1. 내게 드래곤 퀘스트5(DQ5)가 특별한 이유

지금도 이 게임을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드래곤퀘스트5는 JRPG라는 장르 안에서도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RPG가 ‘용사의 여정’과 ‘세계 구원’을 중심으로 삼는 데 비해 이 게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고, 그 인생을 관통하는 핵심을 ‘가족’이라는 주제로 풀어냅니다. 플레이어는 단순히 전투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캐릭터를 조작하는 게 아니라, 한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며, 부모가 되어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까지 함께 걸어갑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게임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을 독보적으로 만듭니다.


실제로 많은 플레이어가 “이건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인생 이야기다”라는 후기를 남깁니다. 게임 속에서의 선택과 경험이 현실의 삶과 겹쳐 보이기 때문인데요. 어린 시절 부모의 보호 아래 있던 기억, 청춘 시절의 친구와의 모험, 인생을 바꾸는 결혼, 자녀와의 만남. 이 모든 순간들이 각자의 인생 경험과 맞닿아 있어, 단순히 엔딩을 보는 것을 넘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2. 아버지 '파파스'와의 기억

게임의 시작은 다른 드래곤퀘스트와는 다르게 주인공이 유년시절, 겨우 여섯 살에서 여덟 살 정도의 아이로 등장합니다. 능력치는 보잘것없고 주문조차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버지 ‘파파스’에게 의지하며 모험을 이어가야 하죠(전투 이후 파파스가 사랑을 담아 초급치유마법 '호이미'를 해주곤 합니다. 근데 이 호이미는 일반적인 주문과 달리 체력 전체회복, 상태이상 회복, MP소모조차 없는... 정말 아버지의 사랑을 담은 호이미입니다). 게임을 하는 내내 파파스는 든든한 보호자이자,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가르침을 주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친구 헨리 왕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파파스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이 장면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버지를 잃는 순간, 이 게임은 더 이상 단순한 모험이 아니었다.” 누구나 부모로부터 보호받던 시절을 지나 홀로 서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듯 주인공은 그날 이후 세상의 냉혹함을 직접 겪습니다. 저는 파파스의 마지막 대사(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것들)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요. 이는 단순한 NPC의 대사가 아니라 실제 아버지가 남기고 간 유언처럼 깊게 새겨집니다. (파파스는 몬스터들을 가지고 놀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지만 아들이 인질로 잡히자... 가만히 있는 장면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괴로운 순간입니다.)


3. 청춘의 무게와 노예의 시간

파파스의 죽음 이후, 주인공은 순식간에 성장의 무대를 빼앗깁니다. 오랜 시간 노예로 살아가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는 과정은 화면 속 픽셀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잔혹할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플레이어가 조작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주인공이 늙어간다”는 연출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고, 지금 다시 떠올려도 참 묵직합니다. 이 시기를 지나며 많은 플레이어들이 느낀 건 무력감이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주인공은 자유를 얻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과도 떨어져 지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이 있었기에 이후의 ‘만남’과 ‘재회’가 더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인생이 늘 순탄하지 않음을, 그리고 고난이야말로 성장을 만드는 계기임을 게임은 은근하게 가르쳐줍니다.

4. 배우자 선택이라는 인생의 분기점

드래곤퀘스트5의 또 다른 명장면은 결혼 이벤트입니다. 비앙카와 플로라 중 한 명을 배우자로 선택해야 하는데, 단순한 분기 이벤트가 아니라 플레이어에게 ‘인생의 선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순간입니다. 누구를 택하든 이후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그 선택이 게임 속 가족의 모습(아이들의 머리 색깔이 달라지는 등)과 이후 서사에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보통 플레이어들은 첫 챕터에서 함께 여행한 추억 때문에 무조건 비앙카를 택하는데요. 아니면 부잣집 딸인 플로라를 고르는 변주를 주는 플레이어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정답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을 구성해 나간다는 메시지가 게임 안에 녹아 있습니다.

5. 가족으로 귀결되는 이야기

결혼 이후 주인공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맞이하며, 가족이야말로 세상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고난은 찾아옵니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죽인 몬스터를 재회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마법에 걸려 돌(석상)이 돼 버립니다. 기나긴 세월을 홀로 돌이 된 채로 보내는 주인공은 도둑들로부터 비싸 보인다는 이유로 머나먼 지역으로 보내지기도 하죠. 아무런 행동도 못한 채 또다시 무기력한 상태인 주인공은 가족과 강제로 떨어져 살아야 하는 시련을 겪습니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을 산쵸(집사)와 자녀들이 찾아내고, 가족들의 힘으로 마법을 풀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장면이 정말 감동입니다 ㅠ ㅠ)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이 순간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했던 것처럼, 이제 주인공은 자신의 자녀에게서 새로운 세대의 희망을 발견합니다. 용사의 자격은 주인공이 아니라 아들에게 이어지고 그 깨달음은 인생이란 결국 세대와 가족을 통해 완성된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이때 저는 “드래곤퀘스트5는 인생의 모든 단계를 다 담아낸 게임”이라고 느꼈습니다.


6. 몬스터와의 동행 – 또 하나의 가족

드래곤퀘스트5의 혁신은 ‘몬스터 동료 시스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지금은 흔한 구조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주구장창 싸워오던 마물들이 이제는 동료가 되어 함께 모험을 떠나고 전투뿐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슬라린, 피에르, 게레게레(보롱고) 등은 지금도 화자되는 귀여운 친구들이죠. 단순한 시스템을 넘어 “적이어도 인연이 닿으면 함께 걸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실제 플레이어들은 이 시스템 덕분에 게임에 대한 애착이 깊어졌다고 말합니다. 특정 몬스터를 끝까지 키워서 최종 보스까지 함께 간 사람도 있고, 우연히 동료가 된 몬스터에 특별한 감정을 쏟은 경우도 많습니다.

7. 인생의 단편을 담아낸 게임

저는 드래곤퀘스트5를 통해 인생의 여러 장면을 배웠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 친구와 단둘이서 떠난 두근거리는 여행, 인생을 함께 보내게 되는 동반자인 아내, 자녀를 품에 안았을 때의 감동,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해 견뎌야 했던 고난까지. 단순히 엔딩을 본다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인생의 한 페이지를 체험한 듯한 깊이를 남겼습니다. “게임이 이렇게까지 깊은 메세지를 담을 수 있구나” 생각은 드래곤퀘스트5를 해본 거의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후기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결국 ‘함께한 시간’과 ‘사람’이라는 단순한 진리. 드래곤퀘스트5는 그 진리를, 모험이라는 틀 안에 가장 자연스럽게 담아냈습니다.


8. 음악이 남긴 흔적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음악입니다. 스기야마 코이치 선생님의 선율은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플레이어의 감정을 강하게 끌어냈습니다. 특히 ‘Melody of Love’는 저와 아내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아내와 연애 시절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 노래를 꼭 신혼여행에서 듣자”고 했었는데요. 실제 발리에서 그 음악을 들었을 때 서로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게임 속의 감동이 현실의 추억으로 이어진 순간이었죠. 이처럼 드래곤퀘스트의 곡을 들을 때마다 특별한 기억을 다시 떠올립니다. 음악이 서사의 한 축이자, 삶의 기억을 불러내는 열쇠 역할을 하고 있는 드래곤퀘스트 음악들은 인생의 사운드트랙으로 자리 잡은 셈이죠.


+ 우리의 결혼식 속 드래곤퀘스트

저희 부부의 결혼식에서도 드래곤퀘스트 음악이 함께했습니다. 오프닝 테마를 신랑 입장곡으로, 생명의 나무곡을 아내의 입장곡으로 사용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게임음악이 아니라, 저희 두 사람의 인생을 함께 설명해주는 상징 같은 선택이었습니다. 결혼식 하객 중에는 “게임 음악인 줄 몰랐다" "정말 잘 어울렸다” 말씀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그만큼 드래곤퀘스트의 음악은 이야기와 현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fin. 서사가 주는 힘

드래곤퀘스트5가 말해주는 건 확실하고 단순합니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복잡한 시스템보다 중요한 건 ‘서사’라는 사실입니다. 단순한 도트 그래픽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플레이어를 울리고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1위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함께 나눈 이야기, 소중한 가족들과 그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자기 삶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드래곤퀘스트5는 저에게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인생의 거울이자 길잡이 같은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아버지와 친구, 배우자와 자녀.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모험. 이 모든 것이 지금도 제 마음 한편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아직 드래곤퀘스트5를 만나지 못하셨다면 언젠가 꼭 시간을 내어보시길 바랍니다. 단순한 픽셀이 아니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당신의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될 테니까요.


-총평

-스토리 : ★★★★★ (5점)

-게임성 : ★★★★ ★ (5점)

-BGM : ★★★★★ (5점)

-아트워크 : ★★★★★ (5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