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어주는 기억의 열쇠
소중한 순간을 기억해두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감정과 공기가 선명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장면을 사진으로 기록하려 합니다. 아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간 저녁, 손을 맞잡고 동네를 산책하던 길, 운동을 데려다주는 길에 아내가 안보일 때까지 기다리던 조용한 시간. 사소한 듯 보이는 순간들이 저의 하루를 가장 단단히 채워줍니다. 누군가에게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저에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조각이라는 생각 때문일까요.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제 마음을 붙잡아 두는 일에 가깝습니다.
자연을 담는 것도 좋아합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꽃들의 색, 길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양이나 강아지, 혹은 하늘에 떠 있는 특별한 모양의 구름까지. 그 모든 것이 저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입니다. 특히 저녁노을은 늘 저를 멈춰 세웁니다. 붉게 번져가는 하늘빛을 바라보면 단순히 ‘예쁘다’ 감탄을 넘어 마음속 깊이 울림이 생깁니다. 지나온 시간들이 스쳐가기도 하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감수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도 늘 작은 꽃이나 구름을 사진으로 남기시는데요.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고 있는 제 모습을 돌아보면 어머니를 똑닮아 있는 것 같아 미소가 흘러나옵니다.
사진이 가진 힘은 참 큽니다. 단순한 이미지 같지만 다시 꺼내보면 그날의 대화, 그때의 공기, 소리들까지 함께 되살아납니다. 머릿속 기억만으로는 희미한 장면이 사진을 통해서는 한순간에 선명해집니다. 특히 예기치 않게 사진첩을 넘기다 오래된 사진을 발견했을 때 잊고 지냈던 감정이 불쑥 찾아옵니다. 마치 과거의 제가 현재의 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 같죠. 그래서 사진을 단순 기록물이 아닌, 기억을 연결해주는 다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저를 이어주고, 때로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사진이 없는 날에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사진첩을 넘기다 텅 빈 하루를 보면 순간 묘한 불안감과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그때마다 듭니다. 모든 날을 특별하게 보낼 수는 없지만,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면 그 하루는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구도나 색감이 조금 서툴러도 괜찮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의 공기를 붙잡아두고 그렇게 하루하루의 흔적을 남기다 보면 추억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가끔 사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영상으로도 많이 기록합니다. 움직이는 장면 속에는 그날의 목소리, 주변의 소리, 바람의 흔적까지 담깁니다. 다시 꺼내보면 단순히 이미지를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 찾아옵니다. 사진이 멈춘 시간을 보여준다면 영상은 시간을 다시 흐르게 만듭니다. 짧은 클립 하나만으로도 당시의 웃음소리, 사람들의 표정, 그날의 공기까지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그래서 여건이 된다면 저는 가능하면 영상을 남기려고 합니다. 그것이 미래의 저에게 가장 선물 같은 기록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특한 스마트폰은 요즘 저에게 작은 선물을 건넵니다. 작년 오늘, 혹은 특정 테마에 맞춰 사진을 다시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가만히 보다가 잊고 있던 장면을 불현듯 만나는 순간 미소가 절로 나옵니다. 불쑥 찾아온 과거 사진은 시간여행을 보내주는 주전자 같아서랄까요. 별다른 준비 없이 짧게 다녀온 여행을 선물받은 기분. 덕분에 일상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때를 떠올리며 오늘의 저와 이어봅니다. 작은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기억들은 때로는 아주 사소한 장면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단단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사진을 찍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일지라도, 평범한 길모퉁이일지라도, 언젠가 다시 꺼내보면 그 순간이 저에게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때로는 “그땐 참 행복했구나”라는 위안이 되고, 때로는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라는 다짐이 됩니다. 사진은 결국 저 자신에게 보내는 기록이자, 미래의 저를 위한 선물입니다. 대단한 풍경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의 눈에 평범해 보일지라도 저에게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한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쌓아가는 기록은 결국 저의 삶을 빚어가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이처럼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저의 삶을 이어주는 끈입니다.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저를 이어주고, 현재의 제가 미래를 꿈꾸게 만듭니다. 앨범 속 한 장의 사진은 그저 ‘이미지’가 아니라, 제가 살아온 길을 증명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건네는 조용한 언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휴대폰을 들고 순간을 붙잡습니다. 언젠가 다시 꺼내보았을 때 이 모든 시간들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기록된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저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