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걱정 쓰나미를 막아주는 나만의 방파제 '게임'
문득 찾아오는 불면의 밤이 있습니다. 저녁 9시쯤, 잠깐 쉬어야겠다 싶어 침대에 누웠는데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버린 그날 밤 처럼요. 한두 시간 눈을 붙인 뒤 깨어나니 시계는 저녁 1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다시 눕고,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어도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피곤했지만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습니다. 새벽 1시를 넘기고 어느새 2시가 가까워지자 괜한 초조함이 몰려왔습니다.
잠을 억지로 청하는 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거실로 나왔습니다. 흔히들 불면의 밤에는 책이 도움된다고 하지요. 저 역시 책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몽롱해진 정신 상태에서는 활자들이 흐릿한 그림처럼 겉돌 뿐 머리 속으로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몇 문장을 읽다 앞의 내용을 잊고 다시 같은 부분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읽히지 않는 책 때문에 답답함이 커지고 잠은 더 오지 않으며, 오히려 ‘왜 나는 못 자고 있는 걸까’ 생각만 겹겹이 쌓였습니다. 독서는 실패했고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때 저를 건져 올려준 건 가장 친근한 취미 '게임'이었습니다. 방 구석에 놓인 닌텐도 스위치 전원을 켜자, 그 순간 즉시 또다른 세계로 이동했습니다. 게임 화면 속의 동료들은 제 머릿속을 차지하던 수많은 고민을 바로 밀어내주었습니다. 함께 주먹을 휘두르고, 새로운 땅을 탐험하며,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에 몰입하자 머릿속을 맴돌던 잡념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고 나서야 저는 ‘아직 잠들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그래도 이 시간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는 안도감을 먼저 느꼈습니다. 불면의 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게임이 제 곁에서 작은 구원자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어쩌면 낮보다 더 많은 생각을 불러옵니다. 평소에는 잊고 살던 후회와 미련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군대에서 겪었던 고된 훈련, 친구에게 건네지 못했던 말, 가족들에게 더 잘하지 못한 순간들이라던가 내일 아내와 이야기해야 할 일, 출근 후 처리해야 할 업무까지 끝없이 밀려옵니다. 이른바 ‘이불킥’이라 부르는 기억들이 새벽에 더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잠들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벌칙은 너무 가혹할 정도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작은 걱정이 점점 커져 결국 저를 삼켜버리곤 합니다. 이 시간은 너무 힘든 만큼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저를 지켜주는 건 게임이었습니다. 화려한 아트워크, 정교한 시스템, 아름다운 음악과 배우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한 편의 세계.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생각도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마치 바다 위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막아내는 방파제처럼, 게임은 생각의 연쇄반응을 멈추게 해줍니다. 화면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의 소용돌이는 잦아들고 오직 눈앞의 모험만이 저를 지배합니다. 잡생각이 끊임없는 성향을 가진 제게 게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생각을 잠재워주는 가장 확실한 피난처였습니다.
게임을 끝내고 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습니다. 피곤함이 조금씩 스며들었고, 눈꺼풀이 무거워졌습니다. 잠자리에 다시 누워 눈을 감으니 약 30분 남짓한 짧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수면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의외로 몸은 개운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었습니다. 걱정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밤을 샜더라면 출근길은 훨씬 더 고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게임 덕에 생각의 흐름을 끊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였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동키콩이 구조물을 주먹으로 시원하게 부수듯, 머릿속 근심도 함께 날아가 버린 듯했습니다.
불면의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다음 날의 마음은 달라집니다. 저에게는 게임이 가장 확실한 구원자였습니다. 게임은 생각의 파도를 멈추게 했고 짧게나마 휴식을 선물했습니다. 덕분에 아침을 맞이하는 제 마음은 피곤함보다 개운함이 앞섰습니다. 불면을 극복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시간을 무력하게 보내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건너는 법을 찾았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올 불면의 밤을 두려워하기보다 게임과 함께 무사히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