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을 찾아 나선 용사의 이야기

(후기/리뷰)동료, 사랑, 용기로 완성된 드래곤퀘스트 11의 서사

by 유앨런

1. 악마라 불리던 아이, 용사가 되다

드래곤퀘스트 11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모두의 환영을 받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악마의 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살아가야 했고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상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영웅으로 불리지 못했던 아이가, 수많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자신이 진정한 용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이 과정은 단순한 성장담을 넘어, 인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가까웠습니다.


게임은 시작하면서부터 주인공에게 명확하게 ‘용사’라는 칭호를 붙여주지만 그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게 되는 건 플레이어 자신이었죠. 그래서 마지막 순간, 그가 세상으로부터 진정한 용사로 인정받는 장면을 마주했을 때 저는 오랫동안 붙잡혀 있던 응어리가 풀리듯 벅찬 감정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판타지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저에게는 한 인간의 긴 인생 여정으로 다가왔던 이유였습니다.

2. 세 번의 여정, 한 작품의 무게

드래곤퀘스트 11은 크게 세 장으로 나누어진 방대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의 RPG라면 한 차례 엔딩으로 끝을 맺고 여운을 남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엔딩 이후에도 또 다른 이야기가 열리고, 마치 새로운 책을 펼치듯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드래곤퀘스트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 역시 이 작품을 처음 클리어한 뒤, 엔딩을 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세 번째 회차까지 이어갔습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몰입이었고, 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반복이었습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단순히 같은 이야기를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놓쳤던 디테일과 캐릭터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드래곤퀘스트 11은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의 수준을 넘어, 반복해서 곱씹을 수 있는 방대한 대작이었습니다. 아마 앞으로의 게임 인생에서 이렇게 깊게 n회차를 반복할 작품은 다시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3. 시간을 건너는 이야기

이 작품의 부제는 ‘지나간 시간을 찾아서’입니다. 제목 그대로, 플레이어는 시간을 거슬러 오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과거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여정을 펼치게 됩니다. 많은 RPG가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것과 달리, 드래곤퀘스트 11은 ‘시간’을 하나의 테마로 삼아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지나간 과거 속에 묻혀버린 선택들을 되돌리고, 잃어버린 이들을 다시 불러내려는 시도는 판타지 속의 사건을 넘어, 누구나 마음속에 지닌 바람을 건드립니다.


특히 영겁의 세월 동안 기다려온 로슈와 세니카의 사랑 이야기는 단순히 게임 속 서브스토리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기다림과 헌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서사였습니다. 실제로 저도 이 장면에서 울컥했던 걸 떠올려봅니다. 마지막 순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화면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이야기가 이렇게도 완결성을 가질 수 있구나”라는 놀라움과 여운 속에 깊이 잠겼었죠.


4. 동료라는 이름의 힘

드래곤퀘스트 11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동료들입니다. 카뮈, 베로니카, 세냐, 로우, 마르티나, 실비아, 그레이그—이들의 이름은 지금도 제게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지인처럼 생생합니다. 모험의 시작부터 함께해준 든든한 카뮈는 형제 같은 존재였고, 귀여움과 당돌함으로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어준 베로니카는 일행의 활력소였습니다. 베로니카의 언니 세냐는 언니의 뜻을 이어받으며 늘 침착하게 모두를 이끌었고, 현자 로우는 친할아버지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아버지처럼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마르티나는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선배였고, 실비아는 특유의 유쾌함과 재치로 언제나 팀의 긴장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초반에는 적으로 맞섰지만 나중에 합류한 그레이그는 단순히 전투의 방패를 넘어 신뢰와 용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확장판에서 동료 각각의 추가 스토리를 접했을 때는 그저 캐릭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사연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동료들과 함께한 시간은 단순히 전투와 이벤트를 넘어, 진짜 ‘여행을 함께한 기억’처럼 저의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5. 음악이 불러오는 전율

드래곤퀘스트 11의 음악은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스기야마 코이치 선생님의 유산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익숙한 선율들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서 새롭게 편곡되어 등장할 때마다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습니다. 플레이어들에게는 마치 과거 시리즈의 추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종합선물세트와 같았다고들 말합니다. 특히 드래곤퀘스트 3의 배경음악이 멸망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말을 타고 달려 나가는 장면에서 울려 퍼졌을 때, 저는 말 그대로 온몸이 소름이 돋았죠.


단순히 BGM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용사들의 이야기가 제 귀에 직접 속삭이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마을의 잔잔한 음악, 전투의 긴박한 음악, 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 흘러나오는 웅장한 선율까지—음악은 언제나 서사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기능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단순히 화면 속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감정을 더 크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6. 일상 속으로 스며든 선율

게임을 끝낸 지금도, 드래곤퀘스트 11의 음악은 제 일상 속에 남아 있습니다. 출근길에 이어폰을 꽂고 메인 테마를 들으면, 지루했던 하루의 시작이 조금은 새로운 모험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생명의 나무’ 테마는 제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도 함께했습니다. 결혼식 날, 신부 입장곡으로 흘러나왔던 선율은 단순히 게임 음악이 아니라, 제 삶의 가장 특별한 순간을 장식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드래곤퀘스트의 음악은 그냥 게임 음악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 음악이다” 이야기를 종종 보곤 합니다. 이처럼 한 작품의 음악이 개인의 삶 깊은 곳까지 스며든 경험은 흔치 않기에, 드래곤퀘스트 11은 저에게 단순히 명작 RPG가 아니라 삶의 한 챕터가 되어주었습니다.

7. 한 편의 인생을 닮은 모험

드래곤퀘스트 11의 여정을 마치고 나면, 남는 것은 단순한 클리어의 성취감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녀온 듯한 무게와 여운이 제 마음을 감쌌습니다. 악마라 불리던 아이가 용사로 성장하고, 시간을 초월한 사랑과 기다림이 이어지고, 동료들과의 유대가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며, 음악이 모든 순간을 더 크게 감싸주었습니다. 또 가족의 소중함과 그 안에서 '소중한 것을 지킬 때 강해지는 사람의 힘'을 볼 수 있죠. 그 모든 것이 겹겹이 쌓여, 저는 이 작품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한 편의 장대한 대하드라마를 읽은 것처럼 깊은 울림을 느낍니다. 2021년도에 첫 클리어 이후 제가 남겼던 텍스트가 있는데요. 여기에 “드래곤퀘스트 11은 게임이 아니라 한 권의 소설 같다”고 적었었는데 드퀘11를 잘 표현하는 말 같습니다.

fin. 단순한 RPG 그 이상의 이야기

드래곤퀘스트 11은 단순한 RPG 그 이상이었습니다. 또 '3인의 드래곤퀘스트 아버지'라 불리는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님과 스기야마 코이치 선생님 2분의 유작인 점도 깊게 남아있죠. 시간과 사랑, 동료와 음악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하나의 인생 이야기였고, 지금도 제 삶의 일부처럼 남아 있습니다. 악마라 불리던 아이가 끝내 용사로 인정받듯, 우리 역시 삶 속에서 수많은 오해와 고난을 견디며 결국 자신만의 길을 찾아갑니다. 언젠가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도 스스로의 삶을 ‘용사의 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기를.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경험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게임이 인생을 닮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총평

스토리 : ★★★★★ (5점)

게임성 : ★★★★☆ (4.5점)

BGM : ★★★★★ (5점)

아트워크 : ★★★★★ (5점)


한줄평:
“세 번의 모험 끝에 남은 건 단순한 엔딩이 아니라, 인생을 닮은 서사였다. 드래곤퀘스트 11은 반드시 경험해야 할 RP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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