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백

누구나 기억의 단어가 있다

흐릿해지는 순간을 남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

by 유앨런


기억은 언제나 제멋대로입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흐릿하고 잊으려 하면 또렷해집니다.

이상하게도 그 불완전함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정확히 기억한다면 아마 일상이 버거워졌을지도 모르니까요.

가끔은 희미해지는 게 더 좋은 거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어떤 장면들은 언어의 형태로 남습니다.

그땐 몰랐던 마음을 나중에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생긴 단어들이 제 안의 ‘기억의 언어’가 됩니다.

예전엔 그저 지나쳤던 풍경이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나중에 한 문장으로 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시절의 제가 지금의 나를 대신해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전 기록을 자주 합니다.

메모장에 몇 줄씩 남기는 일은 제게 작은 기억의 연습입니다.

글을 남긴다고 해서 모두 기억되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머무를 자릴 만들어 줍니다.

그 순간의 공기, 냄새, 빛 같은 것들이 문장 속에 스며듭니다. 언어는 결국 기억의 또 다른 형태이니까요.


살다 보면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건 설명보다 감각에 더 가깝습니다.

손끝의 온도, 피부에 스치는 바람, 계절의 냄새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은 언어로 옮기면 사라져 버리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로 남지 않아도 마음에는 남아 있는 기억들로 새겨지죠.


요즘 들어 ‘기억을 잘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그때의 마음을요.

그 마음을 온전히 다시 느낄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기억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몇 줄의 문장을 남깁니다.

잊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언젠가 그때의 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대부분 기억은 희미해질 겁니다. 하지만 그 희미함 속에서도 남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건 그때의 진심일 겁니다. 그 진심이 문장으로 혹은 조용한 표정으로 남아

언젠가 다시 나를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의 언어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언어입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끈 같은 것.

그래서 저는 오늘도 천천히 그 끈을 더듬어 봅니다.

조금은 낡았지만 여전히 따뜻한 말들을 찾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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