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만들어 가는 것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시작한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브런치스토리고, 두 번째가 글쓰기 공모전이다.
막상 글을 쓰고는 싶은데 무엇에 대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던 중「쓰기의 쓸모」라는 책에서 공모전에 도전해 보라는 글을 만났다. 다만 공모전은 현실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자신을 평가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하라는 조언도 함께 적혀있었다.
그렇게 지난 4월, 에세이 공모전에 첫 도전을 했고 혹시나 하며 설렘과 조마거리는 마음으로 한 달을 기다린 결과는 낙방이었다. 결과 발표일 즈음, 너무 좋은 꿈을 꿔서 '상금 받으면 뭐 하지?, 시상식에는 무슨 옷을 입고 가야 하나?' 하며 긍정확언과 함께 행복한 상상을 했는데 제대로 김칫국이었다. 길몽까지 이어져 내심 당선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내가 마주한 현실이다.
글을 쓰고는 싶지만 매일 쓰기에는 귀찮고, 공모전도 이리 떨어지니 순간 "이건 내 재능이 아닌가?"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뭐 누가 재능 있다고 해서 시작한 일인가? 내가 좋다고, 하고 싶다고 선택한 일이잖아"라고 내 마음속 다른 누군가가 얼른 나서서 말한다.
맞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쓰라고 등 떠민 사람은 없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 할 뿐이다.
#. 나에게 과연 재능이 있을까?
나는 고등학교 이과 출신이다.
허나 학창 시절부터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고,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경험도 여럿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연세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윤동주 백일장"에 참여한 적도 있다. 물론 여기서는 수상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시절, 라디오를 들으며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면 종종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는 했다. 한 5번 보내면 1번은 당첨돼서 화장품, 과일선물세트, 생활용품 등등을 선물로 받아 가족들은 내가 진로를 잘못 선택했다고 했다. 나도 수학문제를 푸는 것보다 책 읽을 때가 더 행복해서 문과를 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라떼만해도 수시전형이 왕성하던 시점이라 담임선생님은 학생부가 아주 나쁘지만 않으면 무조건 수시접수를 권유했다. 그래서 고3 대입 입시를 앞두고 수시전형 3곳 중 1곳은 '중앙대 문예창작과"로 교차 전형을 넣었다. 결과는 서류접수 탈락. 지금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문예창작과는 중앙대였고, 한 곳 정도는 0.00000001%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싶었나 보다.
결국은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전공이 이러다 보니 A4 5장 이상의 리포트를 써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제대로 글을 쓴 경험이라고는 블로그가 전부다.
아니다. 연애편지도 있다.
연애시절부터 기념일마다 남편에게 쓰던 사랑의 편지는 딸아이가 한글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대상이 바뀌어 비록 답장이 없을지라도 종종 쓰고 있다.
#. 재능은 만들어가는 것
이렇게 나의 글쓰기 이력들을 적고 보니 정말 특출 난 재능이 있다기보다 글 쓰는 일 자체를 좋아했구나 싶다.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을 했어도 아무도 내게 글을 써보라고 권한 적이 없다.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남편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아 본 기억은 연애 초반이 대부분이다. 답장이 없어도 그저 나는 쓰고 싶어 내 마음을 글로 담아 보냈다.
고작 첫 공모전에서 떨어졌다고 재능을 논하기에는 너무 섣부른 판단이란 결론이다.
나는 겨우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주했고, 이제 첫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지금 포기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설사 많은 사람들이 "당신 글은 정말 못 읽어주겠군요."라고 악플들이 달리더라도, 그저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잘할 수 있다 여긴다면 나라도 내 자신을 믿어줘야 한다.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설령 재능이 없더라도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것은 간절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간절함을 증명하는 일은 꾸준함, 성실함이다.
앞서 말한 귀찮음은 체력에서 비롯된 문제 같다. 내 체력의 한계가 있다면 운동을 통해 한계치를 올리고, 내 에너지를 쏟는 데 있어 우선순위를 정해야겠다.
재능이 없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 재능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매주 월요일 연재하는 브런치북의 글이 어느새 8회까지 발행되었다.
목요일부터 "마감"이라는 단어로 꽤나 큰 압박을 주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8회까지 꾸준히 글을 쓴 연재작가다. 약 30명의 구독자가 있는 브런치 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는 비법을 강의하고 공유할 정도로 나름 작가 리그에 단 번에 합격한 브런치 작가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나를 믿어보자. 나라도 내 글에 진정한 독자가 되어보자. 나는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