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리바이어던

< 나는 왜 쓰는가 > - 정치와 문학

by 그림책미인 앨리
리바이어던

Writers and Leviathan

1948년 3월에 써서 같은 해 여름 <폴리틱스 앤 레터스>에 게재한 글이다.

리바이어던은 본래 성서에 나오는 바다 괴물로, 거대한 배나 고래 같은 거대한 바다짐승을 가리키기도 한다.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는 사회계약론의 입장에서 절대 권력을 거대 괴물에 비유하는 국가론 『리바이어던』(1651)을 쓴 바 있다. 이 글에서 오웰은 작가가 정치 또는 이념이라는 괴물로부터 개인적으론 무관할 수 없다 하더라도, 작가로서의 본분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 무렵은 그가 병마와 싸워가며 『1984』를 완성하느라 고투하던 때이기도 하다.



1. 첫 다섯 문장(p437)



국가 통제의 시대에 사는 작가의 위치는 이미 꽤 많은 논의가 있었던 주제다. 관련이 있을 만한 대부분의 증거를 아직 입수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국가가 예술을 후원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하고 싶지는 않으며, 다만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행사하는 '어떤 유형'의 통제는 지배적인 지적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달리 말해 여기서는 어느 정도 작가와 예술가 자신들의 태도에, 그리고 그들이 자유주의 정신을 기꺼이 지켜나가겠다는 자세 같은 것에 달려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2. 마지막 두 문장(p447)



그리고 그의 글은 어떤 가치를 갖는 한, 언제나 보다 온전한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가담하지 않은 채 사태를 기록하고 사태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속아서 사태의 본질을 잘못 보게 되기를 거부하는 절반의 자신 말이다.


3. 오웰이 말하는 작가로서의 본분은?(p444~446)


나는 다만 지금 우리가 정치적 충심과 문학적 충심 사이에 그어 둔 선을 보다 선명하게 긋자는 것이다.

그리고 비위에 거슬리지만 해야 하는 어떤 일을 기꺼이 한다고 해서 그런 일에 따르기 마련인 신념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가 정치에 관여할 때는 일반 시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관여해야지 '작가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

정직한 작가라면 글과 정치 활동이 서로 상충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창의성 있는 작가가 격동기에 자기 삶을 두 영역으로 나눠야겠다는 뜻을 내비친다면, 패배주의자 아니면 어리석은 자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상아탑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모든 선택이, 그리고 모든 정치적인 선택 역시 선과 악의 문제이며, 필요한 일은 옳은 일이기도 하다는 오래 이어져온 신념을 아직도 갖고 있다.



절대 권력을 바다의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거대한 권력 앞에서는 작가 또한 흔들린다는 의미가 아닐까.

리바이어던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몰라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오웰이 말하고자 하는 작가의 본문에 조금은 이해한다.





남다른 그림책 큐레이션


'리바이어던'에 대한 그림책은 없지만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있어 소개한다.



8954419291_1.jpg - 출처: 알라딘 서점 -


서정욱 (지은이) 자음과 모음 2006-02-10
원제 : 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 (1651년)


만화형식으로 되어있어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면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https://youtu.be/lRUm5oelq8c?si=63ZYkU-Lysnycj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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