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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Sep 02. 2023

한 여름밤의 소동

< 공감 에세이 > 잔인한 냄새 그리고 흔적

"엄마, 엄마!"

다급하게 들려오는 전화기 사이로 들리는 아이 목소리에 급 긴장되었다.

"세상에. 엘리베이터 안에. 똥 냄새가... 윽!!! 그런데, 그 똥을 내가 밟았나 봐요. 지금 열심히 털고 있는데 안 떨어져요. 으앙~ 지금 학원 가야 하는데 짜증 나요."

띄엄띄엄 전화기 소리로 전해지는 아이의 불평이 장난처럼 들렸다.

대수롭지 않게 수돗가에 털고 호스 이용해서 물로 털어내라고 하며 전화기 빨간 버튼을 눌렀다.

다급해진 아이 이야기를 정리해 보니,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지독한 똥냄새에 숨을 멈춘 상태로 있는데 똥 흔적이 한 곳이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져있었고 안 밟으려고 노력해서 했건만 살짝 긴장을 놓은 사이 똥을 밟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몇 걸음 가다 똥냄새가 자꾸 나서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에 신발을 들춰보니 아뿔싸! 정체불명의 똥이 그것도 태어나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지독한 똥냄새가 하얀 신발 바닥에 떡 붙어있었다. 순간 거친 말들이 쏟아지면서 수돗가로 향했고 열심히 털어보고 있지만 본드도 아닌 것이 딱 달라붙어 큰 아이 혈압이 올라가도록 했다.

도대체 얼마나 지독한 거야?

아이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작은 아이 또한 학원 가야 한다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미 대충 들은 아이는 코와 입을 막고 숨을 참은 채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행히 똥은 밟지 않았지만 작은 아이 또한 태어나서 맡아보지 못한 냄새에 기절할 것 같다는 흥분된 목소기로 현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아예 나갈 생각이 없었고, 남편이 현장 확인하기 위해 직접 나갔다.

나가기 직전 관리실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한 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남편은 현장 속으로 향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발 빠른 걸음걸이의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삐삐삐 삑 드르륵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쏟아내기 시작한 남편의 얼굴은 벌써 상기되어 있었다.

"여보, 이건 정말이지...." 격분한 얼굴과 말을 동시에 다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여름밤의 잔인한 소동을 이렇게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어르신 세 분이 탔다. 사이가 좋아 보이던 세 분 중 한 분이 갑자기 행동이 달라졌다.

설사가 나오려고 하는데 참아야 하는 사람처럼 갑자기 한 분이 왔다 갔다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 갔다. 그러다 그분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면서 뭔가 뚝하고 떨어졌다. 문제는 그분이 움직일 때마다 그 형체가 여기저기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잠시 후 그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사람들은 울그락불그락 된 얼굴로 관리실에 도착했고 흥분된 상태에서 큰소리로 따지로 온 것이었다. 

"여보, 정말 이건 동몰 똥 냄새가 아니에요. 사람 똥 냄새. 냄새 맡을까 봐 숨 참고 타고 내려서 관리실에 가서 경비원 아저씨께 말씀드리고 화면을 돌려보는데, 현장은 가지 않고 가만있어 보라고 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아저씨 말을 들어야 했어요." 하면서 자세하게 일어난 일에 대해 얘기했다.


밖에서 설사를 만나면 진짜 진땀이 난다.

바로 가까이에 화장실이 없으면 낭패다. 그땐 정말 똥이 옷 밖으로 흘러나올까 봐 조마조마한다.

아마 그 어른 역시 그랬을 것이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은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왜 이리 권리만 찾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어른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물론 부끄러워 그럴 수 있다지만 공동으로 사용하는 엘리베이터에 흘린 자국을 치우지 않다니. 혹시 청소하는 아줌마가 당연히 할 거라 생각하고 안 한 것은 아닐까.

몇 달 전 우리 집 앞 현관에 빵 쓰레기봉투를 무단 투입한 사건이 생각났다.

썩은 빵 무더기를 검은색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현관 앞에 둔 사람이나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똥을 흘리고 치우지 않은 사람이나 묻고 싶다. 왜 그러했는지.

어찌 되었건, 난 그 똥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알고 나면 그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어른의 행동에 씁쓸해지며 그렇게 한여름 밤의 소동은 끝이 났다.


다음 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도 모르게 주춤하며 올라탔다.

다행히 지난밤 불쾌한 냄새는 없어지고 인위적인 실내정화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잔인한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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