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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Aug 23. 2023

시원하게 입고 싶지만...

< 공감 에세이 > 여름옷

평소에 하지 않던 손이 얼굴 위로 올라가 햇살을 가린다.

어느 계절보다 강렬한 여름이다.

두꺼운 옷에서 얇디얇은 옷으로 바꿔 입어 조금이라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여름.

어떤 이는 최소한의 옷으로 시원함을 유지하는 반면에, 어떤 이는 뜨거운 햇살과 상관없이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는다. 햇살이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내기하듯이.


이솝우화 중에서 해와 바람 이야기가 있다.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하며 누가 빨리 지나가는 행인의 외투를 벗기는지 대결하는 이야기다. 바람은 강한 바람을 불면 외투를 벗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바람이 강할수록 행인은 옷깃을 더 여민다. 이에 반해 해가 뜨거운 볕을 내리쬐자 행인은 더워서 외투를 벗는다. 내기의 승리는 해가 되었다. 바람이 자책 하며 자신을 쓸모없다고 생각하자, 해는 위로하며 바람이 해야 할 역할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 해가 갈수록 여름에 쏟아지는 햇볕은 게임레벨처럼 한 단계씩 올라간다.

사람들이 인위적인 강한 바람을 만들면 만들수록 햇살은 초강력 볕으로 여름을 달군다.

살인적인 더위는 행인의 옷깃을 벗기듯 우리 옷차림을 더 가볍게 한다.

칭칭 두꺼운 옷감으로 몸을 감았던 옷들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드러내면서 두께 또한 비닐만큼 얇아진다.

재미있는 점은 연령대마다 옷이 달라진다. 


한참 몸이 부풀었던 학창 시절에는 뜨거운 여름일지라도 옷으로 몸을 가리기에 바빴다.

남들은 늘씬하고 기다란 팔과 다리를 훤히 보여주며 자랑하듯이 뽐내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우중충한 색과 약간의 살만 드러내는 옷으로 두툼한 몸을 가리기에 바빴다. 그때는 여름이 더운 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 인내로 참을만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트레이닝복조차 반바지 입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는 '곰'이라 불렸다. 그런데 이 '곰'이라는 명칭을 내 아이에게 할 줄이야...

우리 집 아이들은 다행히도 내 체형을 닮지 않고 아빠 체형을 닮아 날씬하다.

하체도 긴 편이라 여동생은 늘 형부 체형 닮아 다행이라 이야기한다. 외탁했으면 그 원망을 어찌 감당할 거냐면서. 만약 내가 학창 시절 우리 아이들처럼 날씬하다면 반팔과 반바지 입는 것에 고민하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큰 아이는 이렇게 더운 날에도 동복 체육복 바지를 고집하며 입고 등교한다.

반팔 체육복 안에도 짧은 흰 티를 하나 입고 상의를 입는다. 비친다는 이유로 그렇다는데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

으이고, 이 곰아~ 옷을 그렇게 입으니깐 만날 집에 오면 덥다고 하지." 

이렇게 이야기해도 등하교 때만 덥고 교실에 가면 춥기 때문에 이렇게 입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한다. 하긴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 에어컨이 없었으니, 어찌 보면 요즘 아이들 교실환경은 복 받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시원하게 입고 싶지만 입지 못하는 심정을 날씬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홈쇼핑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광고하는 여성 옷을 보면 늘 핏이 살아있다.

그 이유는 몸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 쇼호스트가 입고 보여주는 몸이 내 몸이 아니기에 늘 갈등한다.

시원하게 입고 싶지만 과감하게 클릭을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매년 그런 것은 아니다.

결혼하기 전, 아이 낳기 전 그리고 나이가 많이 들지 않았을 때는 지금보다 배가 나오지 않고 두껍지 않을 때 배꼽도 살짝 내어보고 조금이라도 얇다고 생각한 내 팔을 훤히 드러냈다. 

패션은 자신감이다.


패선의 완성은 얼굴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말한 책 속의 문장처럼 몸의 변화에도 자신감으로 시원하게 몸을 드러내며 여름옷을 입고 싶지만 몸과 마음은 늘 따로다.

큰 아이에게 '곰'이라고 하지만 나도 만만치 않음을 직시했다.

가능하면 두꺼운 팔뚝을 가린 반팔 옷, 과도하게 붙은 허벅지를 조금이라도 얇게 보이기 위해 선택한 검은색 옷들이 많았으며 이렇게 더운데도 단 한 번의 반바지를 입고 외출한 적이 없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직까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떤 이는 시원하게 입고 싶어도 몸때문이 아니라 직업 때문에 입지 못한다.

종일 강한 햇살 아래서 일을 해야 할 경우에는 얇은 긴 옷으로 몸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시원하게 입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생각한다면 몸 때문에 얇을 옷을 입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른다. 


축 늘어지는 뱃살, 질질 끌리는 모래주머니, 흐물거리는 비눗방울 그리고 뜨끈뜨끈한 찜질팩인 여름일지라도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왠지 아까울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뭘 입든 그리 신경 쓰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신경 쓰인다면 집에서만이라도 원시인이 되어보는 건 너무 간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만큼은 시원하게 옷을 입어보려 한다.

팔이 훤히 드러나는 민소매와 다리도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곰이 아닌 카멜레온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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