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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Aug 11. 2023

악귀 - 무더위 탈출

< 공감 에세이 >

- 드라마 <악귀> 포스터 -

귀신은 있다. 단 사람의 마음이 약할 때 귀신은 존재한다.

무더운 여름 탈출하기에 '공포'만큼 딱 알맞은 것은 없다. 

특히 무서운 귀신 이야기는 인간 난로인 사람 몸을 한순간에 떨어뜨린다.

어릴 적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대한 추억은 꼭 무서움, 공포를 막을 수 있는 이불이 필수조건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무서운 순간에 내 눈을 가릴 수 있는 최상의 무기였다. <전설의 고향> 중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잠재된 내용은 "내 다리 내놔."라는 전설이었다. 인육을 먹는 사람 모습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고 다리를 잃은 귀신이 좀비처럼 따라다니며 다리 달라고 하는 모습은 아직까지 내 메모리 속에 저장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드라마 역시 한 여름밤에 방영한 것으로 기억된다.

아스팔트 거리에 이글거리는 태양 자국은 한밤의 공포 드라마로 싹 잊게 해주곤 했다.


난폭하게 노려보던 태양이 비가 되어 내리듯 뜨거운 햇살을 쏟아붓던, 눈부시게 환하고 무덥던 날, 보도블록을 뚫고 나와 번쩍이는 땡볕을 피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보다 후덥지근하지만 빠른 속도와 시원한 냉한 바람이 있는 지하철을 선택했다. 더운 바람이 훅 불어오면서 멈춰 선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 얼른 빈자리를 스캔하며 머리와 발걸음이 함께 움직인 덕분에 자리에 앉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대폰 속으로 빠지듯이 나 또한 더운 공기를 밀어내며 휴대폰 화면에 불을 밝혔다.

집까지 도착하라면 약 30분의 시간이 걸릴 예상에 유튜브를 클릭한다. 가슴이 쫄깃해지며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공포 드라마를 검색하며 클릭했다. 이글대는 태양 아래에서 땀이 저절로 젖어 피부를 자극하는 요즘 같은 날씨에 공포 드라마나 스릴 드라마만큼 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없다.

김은희 작가가 최근 쓴 작품 드라마 <악귀>에 대해 짧은 영상으로 올라온 화면을 빠르게 터치한다.

민속학이라는 소재로 악귀가 보이는 민속학자와 자신에게 붙은 악귀를 떨치기 위해 애쓰는 구산영, 그리고 악귀 존재는 믿지 않으며 이성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두 명의 형사에서 우리가 평소에 귀신이 있다 없다는 논쟁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문을 열었네...?"


<악귀>는 납량 특집의 일회성 자극 드라마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은유해 보여준다. 수사 추리물의 구조를 넣어 극적 재미를 더해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악귀가 나타나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질지 모르니 말이다. 또한 다른 공포 드라마 보다 더 와닿았던 점은 일자리를 좇아 대도시 슬럼가에서 버티고는 있지만 삶의 변수에 대처할 안전장치가 전무한 청년들, 그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고리대금업자, 공공 기관이 외면한 가정 폭력 피해 아동, 조손 가정,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마을에서 도시가 집어삼킨 자녀를 그리워하며 쇠약해져 가는 노인 등이 여러 에피소드에 나뉘어 등장한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라 더 공감하며 집중하게 된다.

- 드라마 한 장면 -


악귀가 붙은 구산영이 악귀가 되는 순간 "문을 열었네?"라고 하며 씩 웃는 표정은 팔에 저절로 닭살이 올라올 만큼 두려운 순간이다. 김태리의 풍부한 감정 선과 정교한 연기, 강렬한 눈빛 덕분에 긴장감은 더 쫄깃해지면서 그 조용한 지하철 안의 정적을 깨버리게 했다.

"악!" 짧으면서 고음의 탄성에 모든 탑승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야 했다.

편안하게 앉았던 자세를 점점 가지런해지면서 내 두 눈은 더 확대되어 휴대폰 화면에 시선 고정되었다.

얼마나 집중했던지 타고 내리는 정류장 역 설명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어디까지 왔는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런! 한 정류장을 더 가버렸다.

악귀 씐 구산영 덕분에 엉뚱한 곳에 내려야만 했다.

"문을 열었네."라는 환창과 동시에 지하철 문이 열리며 후다닥 내려 밖으로 나왔다.

답답하고 뜨거운 공기가 나를 반겼다. 그제야 난 악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의 취약함을 파고들어 미움을 먹고 자라는 사적인 망령.

어쩌면 우리도 악귀 하나씩은 달고 사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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