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Oct 10. 2022

텔레비전이 고장 났어요

< 텔레비전이 주는 영향 >

집 안이 고요하다.

거실을 지키고 있던 텔레비전이 고장 났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뉴스를 보는 광경이 사라졌다.

오전까지만 해도 화면이 잘 나왔던 텔레비전이 오후가 되자 화면이 나오지 않고 소리만 우리에게 들려줬다.

그것도 잠시, 밤이 되자 화면도 소리도 더 이상 보여주지 않고 시커먼 화면에 거실 화면만 초라하게 비쳐 나를 보고 있었다. 


삼 년 전 결혼 때 구입한 텔레비전이 수명을 다해 교체를 해야 했다. 요즘 전자기구 수명에 비하면 10년 넘게 사용했으니 뽕은 뽑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텔레비전을 사야 할지 고민할 때 남편은 신이 난 얼굴로 혼자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번 텔레비전은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 사고 싶다고 결정권을 달라고 했다. 나보다 훨씬 물품을 꼼꼼하게 비교하고 사는 타입이라 흔쾌히 수락했다.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아하는 남편은 텔레비전 사이즈부터 보더니 큰 사이즈로 바꿀 것이라 한다. 약 65인치로 앞에 사용했던 43인치보다 1.5배가량 큰 것으로 바꾸어 검색하기 시작했다. 집도 크지 않은데 꼭 그렇게 큰 사이즈로 해야겠냐고 했더니 영화관 같은 사이즈로 바꾸면 집에서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며 검색을 계속하였다.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나와는 다르게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이해는 했지만 비용이나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내키지는 않았다.


사이즈를 선택한 남편은 국내와 국외 브랜드를 검색하며 65인치에 알맞은 가격을 탐색하였다.

기능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AS도 확인하며 설치 문의 등 분석적으로 알아보았다.

대충 물건을 검색하는 나와는 완전 다른 모습에 그저 놀라웠다.

하루정도 샅샅이 비교하더니 'the***'브랜드를 선택하였다.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였는데 중소기업이었다. 더*은 어떻게 하면' 더 *'표시하고, 어떻게 하면 '더 **되게'성능을 발휘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탄생한 최상급 디스플레이를 소개하는 제품이었다.




삼일 정도 지나니 기사가 텔레비전 설치 문의로 연락이 왔고 구형은 사라지고 신형 TV가 우리 집 거실을 차지하였다. 화면이 너무 커서 왜 큰 사이즈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씩 웃던 기사는 남편이 선택한 거라면 존중해주라며 대부분 크게 보길 원하니 이번 기회에 큰 사이즈로 즐겨보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을 원래 있던 자리로 설치했지만 사이즈가 커서 진열대와 맞지 않았다.

임시방편으로 버리려고 했던 책들을 쌓아 걸쳐서 설치하였다. 지진이나 태풍으로 앞으로 솔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도 있었지만 '설마'라는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한 뒤 설치를 마무리하였다.


늦은 오후가 되자 한 명씩 집으로 왔다. 하교한 아이들이 '우와~'하며 감탄하고 퇴근하고 온 남편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뭐 작은 화면으로 보다가 더 큰 화면으로 보니 색다르게 보이긴 했다.

다만 눈이 나빠질까 봐 걱정되어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벽에 딱 붙어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큰 화면으로 보는 데에도 적응이 필요했다. 때론 더 크게 보이는 사람과 사물 모습에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이것도 금방 적응되었다. 사람은 참 빨리 적응하는 동물인가 보다.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우리와 동고동락은 대형 텔레비전은 약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검은 화면과 무소음은 우리를 사막으로 안내했다. 아침마다 뉴스를 듣던 풍경은 없어지고 집으로 오면 텔레비전부터 켰던 남편의 동작은 멈췄고 집안에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저녁에 할 일이 줄은 남편은 일찍 잠을 청했고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꼭 AS센터에 연락해 접수하라는 말을 신신당부한 남편은 몇 시간이 지나자 톡으로 접수 유무를 물었다. 출근하는 남편과 등교하는 아이들이 나가자 스마트폰으로 AS센터로 접속하였다. 텔레비전 AS를 받기 위해서는 예전보다 더 상세하게 적어야 하는 부분들이 많이 생겼다. 모델명은 기본이고 시리얼 번호와 구매한 영수증이 있으면 첨부해야 했고 증거사진을 3장 쪽 첨부해야 했다. 까만 화면에 비친 거실이 왜 그리 초라해 보이던지 창피하다는 생각도 잠시 얼른 3컷을 찍어 접수하였다. 텔레비전 모델명이나 시리얼 번호를 찾을 때 TV 뒷면에 부착된 스티커를 찾아야 했기에 요리저리 숨은 그림 찾기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작은 글씨로 적힌 스티커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접수하고 오후 1시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센터 쪽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전화를 하니 연결하는데만 시간이 한참 걸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연결되어 확인하니 인터넷 접수는 되었는데 아직 차례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걸까. 다시 전화접수를 한 번 더 하고 기다렸다.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연락은 오지 않아 다시 연락하였다. 제품의 증상에 따라 부품을 주문하고 그 주문 상품이 도착해 기사한테 넘어가야 기사가 고객한테 연락한다는 말과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앞이 캄캄해졌다. 타브랜드는 AS 접수하면 늦어도 이틀 안에는 연락이 왔었는데 내가 성격이 급한 걸까라는 생각과 함께 일주일 정도 텔레비전 없이 지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막막했다.

주말과 연휴가 있다 보니 왠지 그 적막함이 더 길게 느껴졌다.



남편은 말은 안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텔레비전이 삼 년도 못 가서 문제가 생기니 내심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사막 같은 거실에서는 밥만 후다닥 먹고 아이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난 서재로 옮겨 밀린 과제를 했다. 심심한 남편은 휴대폰으로 적막함을 달랬고 거실은 그렇게 서서히 조용해졌다.


텔레비전 없이 사는 집들은 대부분 휴대폰이나 탭 혹은 노트북으로 영상을 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노트북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 두 대 노트북이 있지만 한 대는 고장이 났고 다른 한 대는 내가 주로 사용하였다. 당장 노트북을 쓰지 않으면 좀 사용하자고 하면서 usb를 노트북에 연결하였다.

보고 싶었던 프로그램을 usb에 담아 보려 했다. 그나마 노트북이 있었기 때문에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잠시 웃음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노트북으로 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중도 덜 되고 재미도 그다지 없고 무엇보다 큰 화면으로 보다 작은 화면으로 봐서 그런지 오래 앉아있는 것도 불편하였다. 그래서일까. 처음에 함께 보았던 영상을 한 명씩 자기 자리로 가게 되면서 노트북으로 보는 것은 시들해졌다.


텔레비전 AS센터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다.

성격이 급한 남편은 휴일에도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화 키를 누른다. 

"에이 씨!'

짧은 탄식과 함께 자신이 선택한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더 신경 쓰인 듯했다.

제품에 이상이 있을 씨 10~50만 원까지 예상금액이 나올 수 있는 상태라 더 복잡한 마음인 것 같다.


텔레비전이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집안이 썰렁해지는 분위기가 생기고 웃음소리가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프로그램 본방을 보지 못해 아쉬웠고 무엇보다 얼마 전 바꾼 채널 통합 브랜드에서 제공해준 공짜 쿠폰을 사용하지 못해 안타깝다. 내일부터 다시 원상 복귀되는 날인데 AS센터에서 텔레비전 확인하러 간다는 연락이 올지 내심 걱정이다.


텔레비전이 멈춤 지금 우리 집안은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다만 열심히 아주 열심히 각자 휴대폰에 빠져있다.


텔레비전 전아 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


작가의 이전글 돌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