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Oct 08. 2022

돌꽃

< 내가 빛나는 자리를 찾아서 >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집에 있기가 싫어지는 요즘이다.

집 근처 공원은 없지만 버스로 20분 정도 타고 가면 시원한 푸른빛 바다가 보이고 산책로도 보인다.

바다가 있어 가끔 답답할 때 찾아갈 수 있어 좋다.

모래사장 위에 파도치는 바다를 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걸어보는 것도 좋다.

작은 길을 걷다 보면 공원마다, 산책로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발 지압 코스다.

맨들한 조약돌을 바닥에 박아두기만 했는데 뭔가에 홀린 것처럼 사람들은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맨발로 혹은 양말 신은 발로 여기를 꼭 도전한다. 이상한 고함을 지르면서 빠르게 지나가거나 천천히 즐기며 가는 사람도 있다.


돌멩이.

문득 돌멩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돌멩이 주변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꽃들이 자기만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무리 속에서 모가 나지 않고 매끄러운 돌멩이 자태가 마냥 신기하다.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돌멩이가 애처롭다. 

발로 차도, 밟아도, 깔고 앉아도 아무 반응이 없다.

당연하다. 돌멩이는 무생물이기에. 하지만 이런 돌멩이가 나에게 말을 건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투박하고 거친 돌멩이가 반들반들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풍파를 만나야 할까.

자기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돌멩이를 보며 내가 걸어온 길 속으로 빠져본다.


출산하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갈 무렵 무력해진 나는 잠시라고 틈나는 시간에 뭔가 하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과 도서관을 다니며 눈여겨보았던 강좌를 수강하였다.

그림책 수업으로 책을 어떻게 일어주면 좋을지 가르쳐주는 수업이었다. 그림책 읽기에도 방법이 있다니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욕심을 부려 자격증도 땄다. 자격증이 나니 직접 현장에 나가 배운 것을 해보고 싶어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물론 아직 내공이 쌓인 상태가 아니라 보조로 들어가지만 너무 좋았다. 교육청과 학교에 서류를 넣어야 하는 심사가 남아있어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협회 총괄 책임자는 참여자들에게 이력서와 수업계획안을 제출하라고 했다. 관련된 경력이 없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이력서는 종종 작성해보았기에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수업계획안' 서류는 금시초문이었다. 이게 뭐지라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책임자 말에 귀 기울였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물어보지 못한 난 마치 화려한 꽃들 속에 가만히 있는 돌멩이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자 용기를 내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옆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불쾌한 시선만 던지고 말없이 나가버렸다. 뭐지라는 황당한 생각과 창피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얼굴이 빨개졌다. 집으로 오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최선을 다해 머리를 쥐어짜며 수업 안을 작성하였다. 제발 내가 작성한 계획안이 잘못된 예시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고 그렇게 심란한 마음으로 하루가 지나갔다.


초조한 마음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 표정은 당당했고 혼자만 불안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은 순간이 왔다.

예상한 대로 내가 작성한 수업계획안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사례로 채택되었고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창피를 당했다. 순간 화끈거리는 얼굴 감촉이 느껴졌고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왜 난 항상 이럴까.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깊어지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의심하였다. 그러다가 아니라며 괜찮다며 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내 진가를 알게 될 거라며 애써 다잡기도 하였다. 사람들이 발로 돌멩이를 아무렇게나 차도 여기저기 던져도 무반응으로 대하는 돌멩이처럼 괜찮다고 괜찮아하며 계속 되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은 하나 둘 바뀌어갔다.

동료들은 더 넓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해 달려갔다. 그게 비해 나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시간만 지나가고 있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돌멩이처럼 언젠가는 내 자리를 찾아갈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반들반들해질 때까지 나만의 속도로 다듬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요즘 벽에 자주 부딪히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 허탈함과 실망이 다시 나를 어둠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지금 아무리 잘 될 거라는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돌멩이들이 많은 바닷길을 걷다 그 수많은 돌멩이들 속에서 가만히 빛을 내고 있는 반들반들한 돌멩이 하나를 들어 올려본다. 부드러운 감촉도 느껴본다. 돌멩이가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한다. 비록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도 반짝반짝 빛나는 빛처럼 내가 반짝거릴 자리가 있다고.


"이 돌멩이 너무 예쁘지 않아?"

하며 돌멩이 진가를 알아주는 누군가의 손길처럼 내 꿈, 내 소망 담은 나만의 돌꽃을 오늘도 키워본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을 공포와 불안에 초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