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Oct 07. 2022

당신을 공포와 불안에 초대합니다

< 공포 & 불안 글쓰기 >

갈색으로 온몸을 무장한 생물이 있다.

어둑어둑한 그늘, 가능하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머리가 작아 앞가슴등판 밑에 숨으며 배는 납작하고 넓으며 눈은 완두 모양에 홑눈은 두 개다.

날개와 더듬이가 있고 다리가 여섯 개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으며 지구에서 가장 오래도록 종족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 바로 바퀴벌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어릴 적 꼭 한 번은 나를 공포에 빠지게 했던 곤충.

지난여름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 책에서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벌레를 보며 한동안 잊고 살았던 공포의 바퀴벌레 존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 생각은 나를 다시 공포와 불안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구조는 좀 특별했다. 정문이 가게이고 그 가게 뒤에는 바로 아빠가 직접 빵을 만드는 미니 공장이 있다. 그리고 높다란 방 문턱을 밟고 올라가면 큰 방과 작은방이 연결되어 있고 작은방 뒤로 나가면 귀신일 나올 것 같은 화장실이 있다. 부엌과 욕실은 따로 없었고 아빠 미니 공장 뒤로 긴 공간이 있었는데 여기에 쭈그리고 앉아 설거지와 씻기를 할 수 있었다.

365일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항상 집은 후끈거렸고 빵 만드는 열기와 가게에 있는 냉장고 열, 그리고 보일러만큼은 빵빵하게 틀었던 방은 징그러운 바퀴벌레가 서식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다.

아무리 아빠가 청결하게 공장을 쓸고 닦아도, 아무리 엄마가 가게를 깨끗하게 청소를 해도 이 녀석은 한 번씩 나타나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였다.

어느 날 늦은 주말 저녁, 식구 모두 밥을 다 먹고 한가로이 지내고 있을 때였다.

아빠 엄마는 가게로 나가시고 우리 삼 남매는 텔레비전 보며 하하 호호 웃고 있었다. 그때 여동생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깍~!" 공포의 소리였다. 소리 나는 쪽을 보는 동시에 후다닥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좁은 집에 숨을 데가 어디 있다고 가장 빠르게 날카로운 레이다를 쏘며 장소를 물색하며 저마다 높은 곳을 향해 숨었다. 옷장, 이불장, 책상 위 등 최대한 바닥에 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아직은 동생만 본 상태라 불분명한 위치에 있는 바퀴벌레를 뒤로하고 잽싸게 각자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긴장된 상태로 침 넘어가는 소리와 눈 굴리는 소리만 들렸다. 완전히 집중하여 그 녀석을 찾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거 아니냐며 긴장을 푼 순간 푸드덕 작은 소리와 함께 날갯짓하며 재빠르게 휙 지나가는 그 녀석을 보았다. 우리 모두 동시에 구조요청을 하였다. "아~ 까악~ 아빠! 엄마!" 절규하는 소리에 무슨 일이고 하며 달려오는 부모님 모습이 보이는 동시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바퀴벌레는 우리를 조롱하듯 쳐다보며 휙 한 번 더 날더니 방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또 한 번의 비명 소리가 난 후 부모님은 방으로 들어오셨다.


순간 바퀴벌레와 싸움이 시작되었다. 갈색 곤충을 잡기 위해 맨손을 동원하여 벽이고 방바닥이고 이리치고 저리 치며 '나 잡아봐라'게임이 시작되었다. 요리조리 잘도 피하는 바퀴벌레는 결국 아빠의 커다랗고 철통 같은 손바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탁!" 소리와 함께 큼직한 손바닥이 그 녀석 위로 덮치자 아주 소량의 출혈과 함께 누런 액체가 나왔다.

순간 모두 얼음이 되었고 아빠 움직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승리에 찬 아빠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보더니 휴지로 말끔하게 뒤처리하였다.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손을 씻은 후 편안한 미소로 우리의 공포와 불안을 잠재웠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는 손뼉을 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용감하고 든든한 아빠 덕분에 그 녀석이 우리에게 준 공포와 불안의 초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된 후 예전만큼 바퀴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세스코 덕분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어디 음산한 곳에서 때를 기다릴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지금 내 뒤 혹은 옆 어디선가 갈색의 그 녀석이 이를 갈며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은 공포가 잠깐 엄습해 보며 불안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나도 내가 무서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