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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Jan 04. 2024

떡국의 마음

새해 그리고 두 번의 설

"아빠, 새해는 오늘인데 왜 또 설날이 있어요?"

어릴 적 달력 보면서 늘 의문점이 생겼다. 분명 언론이나 방송에서 12월 31일이 되면 자정이 되면 새해맞이 타종 행사를 크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새해를 맞이한다. 1월 1일 그야말로 새해 첫날이다. 공휴일이기도 하며 양력설이라 부른다. 하지만 음력 1월 1일이 되면 음력 설이 한 번 더 나타난다. 그날은 온 국민이 각자의 고향으로 가는 민족 대이동이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왜 우리나라는 새해를 두 번이나 맞이하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나에게 새해는 1,2월이 아닌 3월이다.

세월이 흘렸지만 새해가 두 번으로 다가오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1월 1일 날 세웠던 새해 계획이 틀어지면 음력 1월 1일을 기점으로 다시 계획을 세우거나 음력설이 지나면 다시 새 계획, 새 다짐하며 무너졌던 마음과 계획을 다시 일으킨다.

결혼을 하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음력설을 지내던 시댁어른들이 갑자기 양력설을 지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몇 년 전부터 음력설이 아닌 양력설을 지낸다. 음력설은 좀 편안하게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음력설에는 집에서 설 차례를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친정으로 가서 다시 친정 설 차례를 지내게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차례나 제사에 대한 책임은 내가 아니다 보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한 번 꺼내다가 집안에 불화만 일어나 버렸다. 그 뒤로는 절대 제사나 차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 이상한 일이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양력설이든 음력설이든 차례 지내지 않고 여행 가는 사람만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양력과 음력의 두 번의 설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제국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된다. 1896년 1월 1일, 대한제국을 건립한 조선의 임금 고종은 '건양(建陽)'이라는 연호를 제시하며 공식 역법으로 태양력을 채택했다. 왕실 탄생일, 공식 제사, 축제 등 모두 양력으로 변경했다. 주체적인 근대화의 길에 접어든 일본을 본떠 세계 표준 달력을 바탄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지겠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고종이 '새 달력 선포'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변화를 강행하여 철두철미하게 양력을 따랐지만 대한제국은 아니었다. '고종실록'에 따르면 조선 왕실은 자신들이 선포한 달력을 지키지 않았다. 음력 정월 초하루에 제사의 일종인 오향대제를 지냈고, 둥지에는 신하들에게 신년 하례를 받고 있었다.

임금이 새 달력을 지키지 않으니 백성들이 새 시대를 맞이할 리 없다. 또한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국권이 넘어가자 조선인들의 마음은 더욱 양력 새해맞이와 멀어졌다.


해방 후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음력설을 지켰다. 결국 1984년 12월 민주정의당이 "내년부터 구정 하루 동안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민적 여망을 수용해 나가기로" 발표하면서 음력설은 공휴일이 되었다. 그 후로 '구정'에는 하루씩 날짜가 덧붙고, '신정' 공휴일은 당일 하루로 축소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양력을 공식 달력을 쓰는 나라에서 음력에 맞춰 사나흘씩 공휴일을 갖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일제 강점기 시대와 군부 독재 정권아 강요한 양력을 민중의 저항으로 이겨낸 결과라고 볼지도 모르겠다. 일리는 있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세계 표준 양력을 택하는 것은 근대화의 핵심이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허점 투성이가 많다. 어쩌면 그 이유가 조선 임금 스스로가 선포한 달력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일은 아닐까? '저항'을 칭송하면서 조선이 스스로 근대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양력 전환을 결정하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 일본 왕실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양력을 선포하고 음력으로 제사를 지낸 조선 왕실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나라를 일본에 넘겨주었다. 조선의 근대화 실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이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여기서 '주체성'의 문자와 마주하게 된다. 

자기주도학습을 강조하듯이 주체적인 삶을 우리 사회에서는 요구한다. 주체적인 삶이란 무엇인가? 자기 인생의 지배자이며 스스로 리더 하는 삶이다. 하기 싫은 일도 기꺼이 해낼 수 있어야지만 나 자신이 바뀐다. 그래서 새해마다 주체적인 나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는 것이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세상도 움직이지 않는다.  올해만큼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옳은 선택을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천미진 작가가 쓰고 강은옥이 그린 <<떡국의 마음>> 그림책에서는 설 명절에 먹는 떡국에 대한 이야기를 따뜻하고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양력설이든, 음력설이든 설 명절에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이날만큼은 방앗간이 쉴 새 없이 바빠진다. 요즘은 방앗간이라는 단어보다 떡집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하기도 하지만 어릴 적 불린 쌀을 들고 방앗간으로 가 기계에 넣으면 마술을 부리듯 흰 가루로 변하고 새하얀 자태를 자랑하듯이 뽑아 나오는 흰 가래떡을 하나라도 놓칠까 봐 눈을 부릅뜨며 지켜봤던 추억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기다란 가래떡을 금방 뽑아 주면 앞다투어 받고자 치열해진다. 그리고 기다랗고 말랑한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먹으면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입안이 풍부해지고 내 세상 같았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설날 아침은 말 걸기가 무섭도록 분주하다.

떡국에 들어갈 재료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엄마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미소를 짓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해 기쁜 마음으로 설날 떡국을 준비한다.

긴 가래떡을 썩둑썩둑 어슷 썰기를 시작으로 뽀얀 육수에 하나씩 떡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떡고 국물은 하나가 되어 추운 날 얼었던 마음을 녹이듯 말랑말랑해진다. 

무명장수를 기원하는 긴 가래떡은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해지길 바라며 맛있게 먹는다.

떡국을 준비하는 사람도 정성스럽고 귀한 떡국을 먹는 사람도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새해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다.


양력설이든 음력설이든 두 번이나 설날을 보내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새해를 맞이하는 희망에 대한 기대감을 정성으로 빚어내는 떡국의 마음은 그대로다. 2024년에는 우리 모두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올바른 선택을 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알라딘 서점에서 제공하는 그림책 이미지를 사용했으며 '리더십의 부재와 이중과제'(조선칼럼 2024. 1.3.)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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