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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May 11. 2023

여행 가는 날

<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


80세가 넘어가면 몸이 많이 약해짐을 주변에서 본다.

시아버지 또한 80세가 넘어서면서 그 당당했던 모습이 많이 없어지시고 치매로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80세가 되었다고 하면 은근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요즘 주변에 돌아가시는 어르신들이 조금씩 보인다.

체육센터에서 늘 건강하게 운동하고 계시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염색하지 않은 흰색 스포츠 헤어스타일에 작지만 다부지셨고 늘 아령을 거뜬히 드시며 운동 잘 못하는 젊은 사람을 코치하시던 분이다. 호통도 치질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 울림도 강해 기억에 남는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저녁에 운동하러 오시나 하고 생각했는데 어제 엄마로부터 그 할아버지 인상착의 이야기하며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건강한 분이시고 자기 건강관리를 철저하게 하시는 분이셨는데. 어쩌면 편안하게 가셨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70이 되고 난 후로 기운이 많이 빠지시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한다. 아픈 것이 많아지고 쉽게 낫지도 완쾌하지도 않으며 늘어나는 것은 아픔의 통증과 하루가 다르게 많아지는 약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늘 보이던 분이 안 보이면 돌아가셨다고 하니 엄마도 말은 하지 않지만 불안한 기색이 보였다. 사람이 아프면 그 고통을 잊기 위해서 '지금 당장 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지만 속마음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숨겨져 있음을 아빠의 죽음으로 안다. 죽기 싫다고 살고 싶다고 엄마한테 했던 말이 아직도 엄마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게 자연의 섭리이고 인생이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긴다.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5단계가 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정, 왜 하필 나라는 생각의 분노, 상황이 나아지지 않음을 깨닫고 미루는 협상(이번 한 번만 살게 해 주면 정말 착하게 살게요.), 결국 협상되지 않음을 깨달으며 우울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 과정이 지나면 피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수용이다.

어릴 적 내 손금을 보던 사람들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산다는 말에 난 오래 사는 것이 싫었다.

주어진 수명만큼 건강하게 사는 것이 바람이라면 바람일까?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아니면 주변사람에게 피해 주며 오래 살기는 싫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매년 돌아오지만 머물러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기후 위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만큼 세월 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을 실감들 때가 있다. 이게 나이 드는 것을 이제 알게 된다는 신호라고 한다. 본인 나이만큼의 속도로 세월이 흘러간다고 하니 매년 다르게 느껴진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맞아들일 때 우린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어르신들은 말한다.

"그냥 잠결에 가면 그만큼 좋을 것이 없겠다."라고. 고통 없이 죽는다는 것 또한 인복 중 하나라고 말하며 오늘도 병원으로 향하는 어르신 말씀에 괜한 씁쓸해진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서영 작가가 쓰고 그린 그림책 << 여행 가는 날 >> 표지를 보면 얼핏 죽음보다는 '여행'에 초점이 간다.

예쁜 벚꽃나무에서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는 정장 입은 할아버지 표정이 마냥 설렘으로 가득 차고 행복해 보인다. 그 옆에 투명 인간처럼 보이는 아이는 한 손에 등불을 들고 할아버지와 같은 방향으로 꽃잎을 보고 있다. 그런 그들을 파란 의자에 앉은 새 한 마리가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뒤표지에 그려진 벚꽃나무 가지에 할아버지가 쓴 모자가 걸려 있다. 할아버지는 어떤 여행을 떠나는 것일까?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란다.


밤 12시가 넘은 한밤중에 손님이 찾아온다.

할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었다며 반갑게 맞아준다. 손님이 왔으니 할아버지는 이제 먼 여행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면 이것저것 챙긴다. 동전, 덜 삶긴 달걀, 옷도 챙기고 길렀던 수염도 깎고 묵은 때도 싹싹 씻고 양복을 입는다. 예전 사진도 챙기고 바둑책도 챙긴다. 여행 준비가 끝난 할아버지는 밖으로 나갔다.

여행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안개 같은 손님은 할아버지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을 꼭 잡고 걸어간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그런데 할아버지, 안 슬퍼요?
슬프기는, 미안하지.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할까 봐 그게 미안해.


할아버지는 편지 한 장을 남기시고 그렇게 먼 여행을 떠났다.


걱정 말거라.
나는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야.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00세 이상을 살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다가오는 문제는 아니지만 한때는 '웰다잉'이 유행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잘 죽는지에 대한 교육과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자격증까지 나왔다.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교육도, 훈련도 필요하다는 점을 잠시 알게 해 준 이슈였다.


부자, 가난, 젊은, 나이 듦에 상관없이 누구나 겪는 '죽음'을 << 여행 가는 날 >> 할아버지처럼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새로운 여정의 시작임을 생각해 본다. 죽음은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깨닫게 한다. 그 자연의 섭리는 누구나 편안하게 맞이하고 받아들여할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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