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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Jan 29. 2024

착한 가게

착한 가게의 존재 - 착한 가게라는 인증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가격 상한령은 인류 최초의 가격통제 정책이다.

1000여 개 상품과 서비스 요금에 최고 가격을 매기고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결과는 대혼돈이었다. 시장 기능이 마비되면서 상품이 사라졌다. 당시 역사학자 락탄티우스는 "많은 사람이 물건 하나 때문에 죽었고, 절도와 약탈이 들끓어 결국 법은 폐지됐다"고 전했다.


가격 통제로 국가와 시민이 서로 적이 된 사례도 있다. 미국 독립전쟁 때 펜실베이니아주 인근 밸리 포지에 진지를 친 조지 워싱턴 군대가 물자 부족에 시달리자 펜실베이니아주 의회는 상인들이 독립군에 값싼 가격에 물품을 팔도록 하는 '물가 통제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상인들은 독립군에 판매를 거부했고, 급기야는 적군인 영국과 거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자 공급이 끊어진 워싱턴 군대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미국 13개 주 연합 의회는 이듬해 이런 법령을 다시는 만들지 말자고 결의했다. 이른바 '밸리 포지의 교훈'이다.


하지만 물가관리 특명을 받는 공무원들은 종종 이런 교훈을 잊는다. 행정안전부는 지역 평균보다 싸게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착한 가격 업소'로 지정해 명패 부착과 함께 상하수도 요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제도 시행 13년이 됐건만, 초기보다 대상 업소가 오히려 감소했다.


가격을 내세운 '착한 식당'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가격'에 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착한 가게는 간판에 '순댓국밥'이라고 써놓고 음식은 백반만 판다. 돼지고깃값이 올라 국밥 가격을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렸더니, 손님들이 5000원짜리 백반만 찾아 결국 국밥 판매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순대국밥이 아니라 가격만 보고 식당에 왔다는 얘기다. 주특기를 접고 흔하게 볼 수 있는 반찬을 내놓는 식당을 착한다고 할 수 있을까. 맛있는 음식을 값싸게 파는 것은 언제나 식당의 미덕이지만, 값만 싸다고 좋은 음식점은 아니다. 가격 대비 음식 맛과 서비스의 질까지 감안해야 진짜 착한 가게를 가려낼 수 있을 것 같다.

- 착한 가게 로고 -





결혼하기 전 '착한 가게'로고만 보고 들어간 가게가 있었다.

도대체 '착한 가게'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낯선 곳에서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결정할 수 있는 확률에도 기여하는 상표였다. 정부가  인정한 가게인 만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깨끗한 환경과 함께 '착한 가게' 상표를 보니 마음이 놓이며 음식맛과 값에 기대치가 올라갔다.

정식메뉴를 주문했는데 맛과 가격에 고개가 갸우뚱했다. '이 맛에 이 가격을 받는데 착한 가게라고?'.

이 기억으로 '착한 가게' 로고와 상표에 신뢰는 떨어졌다. 모든 착한 가게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일부러 '착한 가게'를 찾으러 가지 않는다. 오히려 검색을 통해 맛집 찾는 것이 가격이나 맛에서 보장받은 곳이기에 더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착한 가게'라 로고나 상표가 있는 음식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표나 로고라는 것은 그 분야에 자신 있다는 속뜻이 들어있다. 그래서 유명 연예인이나 이름난 사람을 광고로 이용한다. 그 사람을 믿고 사용하는 제품만 해도 우리 집에 몇 개나 있다. 하물며 나라에서 지정해 준 로고이며 상표인데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건 하나마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저자 말대로 '가격'이 있다.

물가가 천장지부로 솟아오르고 있는 현실에 착한 가게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즐겁게 먹는 외식은 지금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착한 가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판매하면 더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맛보다는 가격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착한 가게'에 대한 정책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K-문화가 인기를 끌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그 내용을 방송에서 연일 보여주고 있는데 이때 '착한 가게'를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가격 대비 음식 맛과 서비스 질까지 감안해서 진짜 착한 가게를 가려내어 한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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