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사랑방

우리 동네 이야기 부산

by 그림책미인 앨리

활기 넘치는 소리가 건물 100m 전부터 들려온다. 쿵작거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노란색 셔틀버스가 정차하는 순간, 사람들이 쓰나미처럼 몰려나온다. 누가 “지금 뛰지 않으면 늦습니다!”라고 안내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옷깃을 여미며 입구를 향해 달린다. 정문을 통과하면 무인 단말기 앞에 마치 기계처럼 차례대로 줄을 선다. 재미있는 건 키오스크 맨 앞줄에 선 이들이 기계에는 손 하나 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정 시간대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회원들로, 입장 전까지 거대한 기계 앞에서 하염없이 ‘목소리 운동’ 중이었다.

그 인파를 뒤로하고 나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히 회원 카드를 찍는다. 쿨하게 번호표를 뽑아 2층으로 올라가 입구에 태그 하면 ‘딩동’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헬스장의 문이 열린다. 하지만 내부를 둘러볼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우리 동네에 어르신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을 정도로 센터 안은 동네 어르신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국민체육센터는 2006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어느덧 20년이 되어간다. 다른 지역에 비해 연령대가 높은 우리 동네에서 이곳은 단순한 운동 시설 그 이상이다. 센터가 처음 생겼을 무렵, 인터넷 예약 대신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야만 수강 신청을 할 수 있었던 치열한 시절이 있었다. 특히 개인 사물함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대입 입시만큼이나 뜨거웠다. 그때 팔팔했던 40대 어른들이 세월을 따라 이제는 60~80대 어르신이 된 것이다. 이들에게 헬스장은 근육을 단련하는 곳이라기보다, 안부를 묻고 외로움을 달래는 ‘동네 사랑방’에 가깝다.

이곳의 분위기는 시간대별로 확연히 갈린다. 과거엔 이용 시간제한이 없어 새벽에 와서 밤에 가는 분들도 계셨지만, 지금은 규정이 생겨 머무는 시간이 조금 줄었다. 방학이면 가끔 보이던 젊은이들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새벽 6시, 아침잠 없는 부지런한 분들이 센터의 문을 연다. 이들은 건강에 대한 의지가 남달라 기본 두 시간은 거뜬히 운동을 즐긴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에도 샤워만큼은 꼭 하고 갈 정도로 성실하다. 오전 9시 이후는 조금 더 여유로운 이들의 시간이다. 아침 식사를 마쳤거나 병원 진료를 보고 온 분들은 목소리부터가 우렁차다. 가끔 무리 지어 다니며 공동체 안에서 ‘팀 파워’를 과시할 때면 그 기세에 눌리기도 하지만, 그 또한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감임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번은 탈의실에서 ‘자식 배틀’이 붙은 걸 목격했다. 아들이 낫네, 딸이 낫네 시작된 대화는 은근히 자식 자랑으로 번졌다. “자식 다 소용없다”며 허탈해하던 분도 계셨지만, 결론은 아들 찬양으로 끝나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만히 듣다 보면 그 거침없는 자기주장 뒤에는 ‘나 아직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숨어있는 듯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오후 5시가 넘으면 하루 일과를 마친 이들이 에너지를 정리하러 오고, 해가 완전히 저문 뒤에야 퇴근한 직장인들이 조용히 기구와 씨름을 시작한다.


우리 동네 체육센터는 오늘도 어르신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가끔은 막무가내인 고집에 혀를 내두를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렇게 목소리가 크고 주장이 강하다는 건 그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 땀 흘리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그분들의 활기 덕분에, 멀리서 떨어져 사는 자식들의 마음도 조금은 놓이지 않을까. 나 또한 그 틈바구니에서 기분 좋은 소란함을 동력 삼아 오늘 분량의 땀을 흘려본다. (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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