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네 이야기
배스킨라빈스 31에만 골라 먹는 재미가 있을까? 나는 요즘 ‘골라 마시는’ 카페에 간다.
아이스크림만 골라 먹으란 법은 없다. 우리 동네 골목에는 민트초코만큼이나 호불호가 확실하고, 체리쥬빌레만큼이나 상큼한 개성을 가진 카페들이 줄을 서 있다. 부산 전포동 카페거리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한 다리 건너 카페가 하나씩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건널목 건너 미용실 옆에 작은 커피 가게가 들어서더니, 몇 달 사이 죽집 옆에도 커피숍이 생겼다. ‘어라?’ 하는 사이에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도 카페가 입점했다. 다시 몇 달이 지났을까. 병원 건물 옆에 또 다른 카페가 생기더니, 부동산 옆 비디오 가게가 문을 닫은 자리마저 카페가 차지했다. 방송에서 대형 카페 소식이 들려오더니, 작고 소박한 우리 동네에도 3층짜리 대형 카페가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우리 동네에 커피 애호가가 이렇게나 많았던가?’라는 물음에 나는 그저 “글쎄요……”라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집 건너 있던 가게는 ‘통닭집’이었다. 통닭과 술을 팔던 가게들이 즐비했고 미용실이 붐볐는데, 어느 순간 통닭 냄새가 사라진 자리를 커피 향이 꿰찼다. 은퇴 후 휴대폰 매장이나 편의점, 통닭집을 운영하던 이들이 이제는 우후죽순 카페를 차린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고객 유치를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골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해졌다. 신기하게도 똑같은 커피인데 가게마다 맛이 조금씩 달랐다.
대부분 프랜차이즈 카페지만 선택지는 다양하다. 며칠 전에는 버스 정류장을 마주 보고 또 카페가 오픈했다. 유명 모델을 내세운 곳이 두 군데, 나머지 프랜차이즈들은 소박하게 운영 중이다. 배스킨라빈스처럼 어떤 맛을 선택할지는 언제나 고객의 몫이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수많은 메뉴 중 내가 가장 즐기는 건 따뜻한 아메리카노다. 너무 진한 맛은 선호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동네 카페를 돌며 ‘따뜻하고 연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다 마셔보았다.
내가 카페를 고르는 첫 번째 기준은 ‘주문의 즐거움’이다. 키오스크든 대면 주문이든, 점원이 상냥한지를 먼저 살핀다. 기분 전환을 위해 커피를 마시는데 주문 단계에서 기분이 상하면 다시는 그 가게를 찾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역시 맛이다. 같은 원두라도 가끔 탄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은 피하게 된다. 세 번째는 가격의 합리성이다. 1,500원부터 4,500원까지 다양한 가격대 중, 그 값에 걸맞은 만족감을 주는지 확인한다. 마지막으로는 속도다. 여유로울 때는 상관없지만, 바쁜 시간에도 빠른 손놀림으로 메뉴를 완성해 주는 가게에 마음이 더 간다.
기분 좋게 만드는 문구가 적힌 카페, 환한 미소로 손님을 반기는 카페, 지인과 오래도록 담소를 나누고 싶을 때 찾는 분위기 있는 카페까지. 커피 맛이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 미세한 차이와 분위기에 따라 그날그날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달라진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어느덧 나만의 ‘단골 카페’도 생겼다. 한때는 손님 유치를 위해 젊고 잘생긴 바리스타를 고용한 가게도 있었다. 주로 여고생들이 타깃이었지만, 그 틈에 섞여 슬쩍 눈호강을 하며 커피를 마신 기억도 즐거운 추억이다.
오늘도 우리 동네에는 ‘골라 마시는’ 카페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원래 이토록 커피를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커피가 우리를 사랑하게 만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