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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Dec 02. 2022

내 돈 내 산 음식

< 에세이 글쓰기 >



© rodlong, 출처 Unsplash



일 마치고 병원 갔다 친정에 잠깐 들러 음식 챙겨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가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환승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걸어가는 것보다 버스를 선택하였다.

갑자기 차가워진 칼바람을 맞아가며 어두운 거리를 총총 걸어가기가 너무 싫었다.

서 있더라도 밝고 온풍기 고마움을 잠시 느낄 수 있는 버스가 좋았다.

퇴근 시간이라 빈자리는 역시 없고 차는 밀렸지만 거리가 멀지 않아 서 있을 만했다.

무거운 몸으로 현관문 열고 가니 아이들이 인사하러 나왔다.

근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에서 혼자 밥상을 펴고 도넛을 먹으며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큰 아이였다.

"너, 동생한테는 먹어보라고 한 거니?"

"아니요."

"왜?"

"제 돈으로 산 거라 혼자 다 먹을 건데요."

"....... 뭐라고!!!"

당연하다는 말과 당당한 눈빛을 보내는 큰 아이의 말과 행동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무리 자기 돈으로 샀다지만 동생한테 먹어볼래라는 물음 정도는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치밀어 올라오는 화는 필터링되지 않고 폭발하였다.

"아니, 동생한테 물어는 봐야 되는 거 아니니? 이 시간 되면 다 배가 고픈데, 너 혼자만 먹을 수 있니!"

격분한 나는 평소에 하지 않던 흥분과 고함으로 큰 아이를 코노로 몰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내 돈으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사서 먹는데 그게 그렇게 화나는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은 내 얼굴을 더 붉게 물들이게 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 작은방에 가서 먹어!"

어떻게 저 혼자 생각하지. 책은 왜 읽고 생각은 왜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내가 잘못 가르쳤나라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내가 너무 오버한 건가.

내 상식으로는 큰 아이 행동에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콩도 반으로 갈라 먹는 것이 배려인데 하물며 가족인데 어쩜 저만 생각하는 걸까.

눈치를 보던 큰 아이는 저녁을 안 먹겠다며 방문을 닫았다.

작은 아이는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눈치 보더니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 geralt, 출처 Pixabay


물론 가족이라고 무조건 내 것을 나눠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만 생각하는 큰 아이의 이기적인 발언에 화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 네가 산 돈으로 네만 먹었으니 너도 이제 엄마가 산 돈으로 만든 것, 음식은 먹지 마라!"

유치한 방법이지만 똑같이 응수하고 말았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큰 아이는 용기 내어 내 곁으로 왔다.

"엄마, 아까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인가요?"

어이가 없었다. 반성하는 것이 아니었다. 순간 큰 아이가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 뉘우침을 말하는 것 같았다.

"너, 뭐 허락받으려고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아니지?"

"제가 하나 먹어보고 동생한테 권유하려고 했는데..."

"네가 먹기 전에 물어보는 게 순서 아니니?"

"물어보는 것이 먼저 일 이유는 없잖아요. 왜 그렇게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어요."

또다시 꺼지려던 불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 아이 방문 소리에 내가 심한 걸까. 이상한 걸까 하며 생각한다.

먹는 음식조차도 나눠먹지 않는데 만약 내가 없으며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진심으로 돌볼지 걱정이었다.

내가 장녀라 어릴 때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 내 아이에게만은 그런 부담을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언니니깐 네가 잘해야 된다는 말은 되도록이면 삼갔고 큰 아이라고 무조건 새 물건을 주지 않았으며 친구들과 노는데 동생 심심하니 데려가라고 하지 않았다.

집에서 동생과 심하게 싸워도 나가면 서로 챙겨준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해 내가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 말처럼 난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문득 음식으로 인해 서러웠던 일이 생각났다.

대학시절 엄마와 떨어져 지내고 싶어 학교에서 모집하는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면접을 통해 통과한 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미국으로 갔다. 우연히 같이 간 대학 동기와 한 방을 쓰게 되었는데 그때는 모두 한국 음식이 다 바닥난 상태였고 월급날이 아지 되지 않아 돈이 없었던 시기였다.

딱딱한 빵 한 조각이 전부였는데, 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니 어디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났다.

어디서 나는 건지 궁금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룸메이트가 흰쌀밥에 고추장과 계란 프라이 하나를 넣어 참기름 한 방울을 막 떨어뜨려 비비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고이고 '꿀꺽'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룸메이트는 곁눈질로 나를 흘깃 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요란하게 돌리고 있는 회오리 숟가락은 그 친구 입속으로 직행하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평소에 이기적인 친구인 줄은 알았지만 빈말이라도 '같이 먹을래?', '한 입 먹어볼래?' 정도는 하는 게 정이 아닌가. 그렇게 매정하게 혼자 먹던 친구는 매웠는지 "습~" 하는 탄식을 내며 화장실로 사라졌다.

'나쁜 계집애. 먹어보라는 소리도 안 하는구나. 매정한 년.'

그날 일은 지금도 생생할 만큼 잊지 않고 내 마음 구석에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어쩌면 큰 아이 행동에서 그 친구의 이기적인 모습이 교차되어 내가 더 흥분한 것은 아닐까.


휴~

긴 한숨만 나온다.

얼렁뚱땅 넘어가기에는 옳지 않은 것 같고 어떻게 아이와 풀어야 할까.

시험기간이라 예민한 아이에게 내가 너무 한 걸까.


그랬던가 말았던가 작은 아이는 내 마음도 모른 채 드르렁 거리며 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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